몇년 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Rodney 사건은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합니다. 도주하던 운전수를 잡아서 몇명의 경찰이 둘러서서 경찰 방망이로 흑인을 폭행했고 이 장면이 비디오 에 찍혀서 방영되었습니다. 흑인의 퉁퉁 부은 처참한 얼굴도 나왔습 니다. 미 전국의 흑인들이 분노 했습니다. 그 사건이 L.A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도시의 경찰들은 종종 필요 이상의 폭력을 사용해서 언론에 보도가 되곤 합니다. 자기 방어라는 미명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총으로 죽이기도 합니다. N.Y에서 뉴욕 시장이 불법 주차하자 시장이 탄 차임을 알면서도 경찰이 티켓을 발부한 사건을 신문지상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찰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하면 초법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부작용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거국적인 관점에서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들에게 공권력을 주고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미국 사회입니다. 미국 사회에 살면서 경찰한테는 고분고분 하게 대하는 것이 신상에 유익하다는 것을 다 체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자가 등장 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반대자들과 힘없는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 후 독재권력의 피해자였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 후 한 대통령도 서민의 편에서 세상을 보던 분이었습니다. 사회의 방향을 공권력에서 서민 중심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최소한의 필요한 실력 행사조차도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공권력을 우습게 보았습니다. 파출소에서 술취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횡패부 리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데모대는 무력을 사용하지만 경찰은 방어만 했습니다. 젊은 의경들만 다쳤습니다.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전 선생이 5학년 학생의 머리를 때렸 습니다. 그 자리서 학생이 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그 선생을 연행해 갔습니다. 아들이 공수 부대에 차출되어 갔습니다. 휴가 중 자신이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자랑삼아 이야기했습니다. 그 엄마가 공수부대 대대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 아들을 그렇게 했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한국은 권위부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독재 국가보다 질서가 없는 무정부 사회가 더 위험한 것을 우리 는 다 압니다. 국가나 가정이나 교회도 질서를 위해 합당한 권위가 있어야 하고 또 그 권위를 존중하며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축복입 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