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김범수 목사.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지만 제일 힘든 것이 있다면 사랑일 것이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주기 위해 사는 것이다. 사랑은 받을수록 행복하고, 사랑은 줄수록 기쁘다. 그 어느 누구도 사랑받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없고,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것을 가진 것도 좋지만 적은 가운데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씀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17:1). 사랑은 풍요로운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지 않아도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한국 광화문 교보빌딩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큰 현수막 광고판에 아름다운 글을 써놓는다. 그 글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결혼하기 위해 맞선을 보는 사람들이 그냥 하루 몇 시간 보고 결혼하자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몇십년을 살아도 사실 모르는 것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관계이든지 아니면 일을 하는 것들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것들이 아니다. 사람을 어찌 한 순간만 보고 사랑할 것인가? 사람의 됨됨이를 어찌 하나의 사건만 보고 평가할 것인가? 할 수 있다면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 예쁜 것이 보이고, 사랑스런 것이 보인다.

장은 찍어보아야 맛을 안다고 했다. 간장이 단지 짠 맛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구수한 맛을 가진 이유는 바로 세월이다. 세월이 장맛을 내는 것이다. 덥고, 춥고, 바람과 더위를 지나고 나서 함께 속에서 어우러져서 입에 대는 첫 맛과 마지막 여운의 맛을 내게 된다. 사랑도 그런 것이다. 살면서 사랑하는 것은 장맛이다. 세월 속에서 숙성된 사랑, 사계절의 변화 가운데 자기를 지킨 사랑이 숙성된 사랑이다.

몇 달 사귀다가 헤어지고, 몇 년 살다가 짐을 싼다면 진짜 숨겨진 사랑의 맛을 모르는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젊어도 사랑하고, 늙어도 사랑하고, 능력이 있을 때 인정하고, 능력이 없을 때는 격려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젊어서 사랑도 아름답지만 황혼의 사랑이 더 보석 같은 이유는 강하지 않지만 그윽한 향내를 품는 차와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백령도에서 동무들과 놀 때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동네 큰 나무 밑까지 업어주기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사투리로 업힌 사람이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서 묻는다. "어데 까지 와서?" 이렇게 질문할 때 업어준 사람이 아직 거리가 많이 남았을 때는 이렇게 말한다. "상가 멀어서!(아직 더 가야돼!'). 이 때 업힌 사람이 확인하며 말한다. "상가 더 나마꾸나!(아직 더 가야하는 구나!).

우리의 사랑은 상가 더 가야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다하여도 배고프고, 주고주어도 모자란다. 사랑은 끝이 없다. 사랑의 길은 멀고 멀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낳은 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키워 준 것만으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은 죽을 때까지 사랑과 싸워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다(요한복음13:1). 그 끝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까지이고, 그들을 위해 죽는 데 까지를 말한다.

죽는다는 말은 엄숙한 말이다. 사랑을 위해 죽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일이겠는가? 말은 쉬워도 그렇게 산다는 것은 죽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 이웃, 직장, 교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 이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다짐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그 사랑을 이루도록 격려하며 말해야 한다. "어데까지 와서?, "상가 멀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