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이충구선생이셨다. 얼굴이 기다랗고 좀 무섭게 생긴 선생님이라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나에게는 좀 부담이 되었다. 어쩌다 반장이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반장, 바깥에 나가서 회초리 하나를 만들어 와"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회초리가 크고 단단하면 친구들이 맞을 때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약하고 가느다란 것으로 준비하여 선생님께 드렸더니 화를 내시면서 "이것도 회초리라고 가지고 왔어? 다시 다른 것으로 가지고 와"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상했던 대로 '참, 무섭고 인정머리 없는 선생님이시구나' 하면서 크게 깊은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1학년을 다 보냈다.

그런데 1학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을 마치고 통지표를 받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선생님은 나를 너무나도 칭찬하셨고 "장래에 이 사회를 위해 대성하겠음"이라고 기록해 두셨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도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때로는 삶에 힘들고 낙심 할 때가 있을지라도 언제나 그 때 그 선생님의 평가가 마음에서 울려 나왔던 것이다. 지금 그렇게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이만큼이라도 목사가 되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크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그 선생님의 격려의 말씀이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시대는 너무나도 삭막하고 냉정한 것 같다. "잘 하면 욕을 먹는다." 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만큼 시기와 질투와 바람을 많이 맞을 정도로 칭찬과 격려가 없는 불행한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잘못 했을 때 비난은 쉽게 하면서도 잘 했을 때 칭찬은 그렇게도 인색하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바로 삶의 경쟁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격려와 칭찬을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는 곧 그 사람의 장래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런 한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이 소년은 열 한 살 때 이미 동화 한 편을 써냈다. 그리고 그 동화를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칭찬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얼음장같이 냉담하게 대해 주었던 것이다. 이 소년은 너무나도 실망하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자 엄마가 왜 그러느냐고 그 연유를 물었다. 아들은 시무룩하게 바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해 주었다. 엄마는 아들의 손목을 잡고 꽃밭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제 간신히 새싹이 나오고 있는 한 그루의 꽃을 보여 주었다. "얘야, 이 꽃을 보거라. 누가 이것을 꽃이라 하겠니? 이제 겨우 잎 하나를 내밀고 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작은 잎이 큰 잎으로 변하고 이렇게도 나약한 줄기가 큰 줄기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는 멋진 꽃을 피우게 된단다. 이는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연약한 이 꽃잎과 같이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야. 그러므로 계속해서 열심히 글을 쓰고 또 쓰면 나중에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글을 쓰거라." 이 소년은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용기나 났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글을 쓰며 성장해 갔습니다.

훗날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 마디가 이웃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 반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와 칭찬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엄청나게 새롭도록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돈들이지 않고 힘들이지도 않은 채 이웃의 인생을 복되게 해 줄 수 있는 격려와 칭찬 한 마디를 아끼지 말아 우리 삶의 풍요로움을 서로 함께 만들어 가는 그런 멋진 삶을 추구해야 하겠다. 과부의 동전 두 닢을 칭찬하시던 우리 주님의 그 풍성하신 마을과 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