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오래전 한국에 집회가 약속되어 있어 Sea-Tac 공항으로 나갔다. 일찍 나간다고 서둘렀는데도 이미 창구에는 긴 줄과 함께 커다란 가방들이 질서정연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무거운 가방을 이끌며 맨 꽁지에 서 있는데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미국 경찰 3명에 둘러싸인 채 스페셜로 책킹을 하러 가고 있었다. 그 때 변호사로 보이는 한 신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뭐라고 하더니 챙킹을 보류하고 뒤쪽으로 나왔다. 나도 얼른 대열에서 빠져 나와 그들이 둘러 서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부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경찰들은 이민국 소속 경관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목사인데 잠시 이 여인과 이야기 좀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시간을 얻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한국에 IMF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을 때 큰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당한 남편과 아들이 이곳 시애틀에서 살고 있는데 그 남편을 만나러 왔다가 남편이 불법 체류 신분인 것이 탈로나 이처럼 입국도 거부당한 채 감옥에서 이틀이나 잡혀 있다가 오늘 아침 한국 가는 비행기편으로 추방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여인은 합법적인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도 보고 싶던 아들도 그리고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도 만나 보지 못한 채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감옥소에서 그처럼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보낸 시간으로 그 여인은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아들에게 입히려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양복을 한 벌 준비하고 주일에 함께 온 가족이 교회에 가려고 일부러 토요일로 시간을 맞추어서 왔는데 아들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하고 이렇게 되었노라고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미국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가슴 아픈 고통을 감래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들이 생이별하고 있는 현실이 또한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한국에 나가 머무는 짧은 체류 기간 동안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외국인들을 접해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입국하고 취직하여 돈을 벌기 위해 엄청난 빚을 안고 들어온 동남아 쪽의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 그들을 강제 추방하도록 결정함에 따라 돈도 벌지 못하고 빚만 잔뜩 진 채 그렇게 그들은 자국으로 추방되든지 아니면 한국 내 다른 곳으로 쓰며 들어 불법 체류 신분으로 도망 다니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만 했다. 

사람의 사는 삶이 이렇게도 어렵고 힘겹다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가는 길을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처절한 삶의 전쟁과는 상관  없이 엄청스런 특권을 누리고 사는 부류들도 역시 바라볼 수 있었다. 집회 기간 동안 머물고 있던 호텔의 부속 위락 시설에는 하루 종일 사우나와 골프 연습장들이 빈자리가 없을 만큼 차고 넘침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치부하면 아무 것도 아닐는지 모르겠지만 사는 자체가 고통의 현실이고 먹는 것조차도 문제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면 최소한의 삶의 기본만큼은 누릴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살기 위해, 함께 살아야 할 가족들까지도 생이별을 고한 채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도 그것마저도 보장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그 얼마나 고통과 한으로 얼룩져 갈까를 생각해 보면 그들은 결코 우리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닐 성싶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나는 평안하고 부족함이 없어도 내 이웃들이 이처럼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결코 나도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가 없는 까닭은 우리 인간은 바로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진실로 이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들, 사업하는 사람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더불어 잘 사는 길을 마련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닐 성싶다.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 느껴지고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기를 원하는 참된 인격자들로 우리들의 생의 가치관만 바꾸어도 살지 못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고 있는 조용한 비 내리는 이 밤에도 어디선가 외로움과 가난에 떨며 신음하고 있는 형상들이 떠올라 가슴이 쓰려 옴은 나 역시 그들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