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Photo :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숲 속 자갈모래 광장 앞에서 정비된 원형 건물은 분홍빛 옆으로 길게 정갈하다
빈(Vien), 중앙 통 거리로부터 한 시간 남짓 달려 온 거리,
숙연히 발에 채 이는 모래들 소리마저 음악으로 들려오고 있는데,

슈베르트. 브람스. 쥬폐. 요한 스트라우스. 카롤 체르니. 쇈베르그
모차르트 모두가 함께 일어나 부활의 교향곡이 되어 나의 귀에서
화려하게 숲 속 공간을 흔들었다
무덤, 여기 하나하나, 내 작은 가슴 안에 꽉 차도록 파고 들어와서
지난날의 나의 허울들, 구석구석 캐어내어, 悲愴처럼 화려하게 흔들어 놓다가
고요하게, 고요하게 짙은 풀 내음 으로, 숨소리마저 잦아들어가게 하는 구나

모차르트의 묘비만은 주인 없는 기념비로만 남아,
누군가 하얀 장미 한 송이 쓸쓸히 올려, 뉘여 있어, 실재로는
그의 무덤은 라벤 거리 6-8번지,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다지만
그 묻힌 정확한 위치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무덤.

1791년 겨울, 그의 운구는 슈테판교회당에서 아내 콘스탄체도 참석치 않은 채
바람과 진눈깨비 날리는 으스레 찬 날,
인부 두 사람 만이 무덤으로 운구했기 때문이라지만,

바로 돌아설 때, 누군가의 무덤 앞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커다란 묘소가 눈 안으로 들어오다
몸체가 실물보다 좀 더 크게, 반짝이는 동판으로 조각 돌아앉아서
널따란 등을 구부리고 있어,
오른 쪽 어깨너머로는 커다란 손 등판이 어깨 등 아래로 처져 내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은 넙적 다리 아래를 거쳐서 엉덩이 윗 쪽으로 엉치를 받쳐 올려
자색 동판 묘, 무슨 사연이 있길 레, 저런 동판 묘비를 덩그러이. 뭉쳐놓았을까..

언제라도, 묘소 앞에 설 때면
머리 안에서, 뒷 녘으로 스쳐 달려가는 현란한 영상이 있기 마련인가
좀 더 진실해 지고픈 회한과, 애증의 얼굴들에게 미안스런 아쉬움을 금치 못해
기왕이면 희대의 음악이야 창출해 낼 수 없는 지금의 나라 하여도
心想에서야, 꿈 이야기 같은 자신의 진솔한 影像이야
왜 못 만들어 내겠느냐는 소복하고 작은 욕망만은 챙겨 낼 수 있어서
더 진실하고 숙연한, 진면목의 나의 그림자 하나

만들어 놓고 갈 수 있다면 좋겠네,
그럼 정말, 정말 좋겠네.

브람스의 묘, 베토벤의 묘, 슈베르트의 묘, 모차르트의 묘, 체르니, 또 수페의 묘 등.
(Photo : 최윤환) 브람스의 묘, 베토벤의 묘, 슈베르트의 묘, 모차르트의 묘, 체르니, 또 수페의 묘 등.

언제나 사람은 무덤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 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돌덩어리 같은 마음의 소유자까지 합쳐서 모두 그래도 조금은 순결해 지는 것 아니겠냐고 나는 생각 다듬어 봅니다. 아마도 시를 마음속에서 다듬어 내고 있는 사람 마음 상태 역시 같은 입장의 생각이라고 다져 봅니다. 진실하게 시를 쓸 때, 자신에게 스스로 정직하지 않고서, 시어, 시 단어, 시 한 줄을 다듬어 놓을 수 없겠기 때문이겠습니다.

언젠가는 꼭 한 번이라도 세계 최대의 악성들 무덤, 특히 세계적 음악의 작곡가들이 누워 있을 무덤 동산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참으로 참으로 오래 전 젊었을 때부터도 맘속에 품고 있었던 소원이었습니다. 그 때는 한 두 번 쯤 또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까지 가상스럽게도 했던 기억도 어렴 풋 생각 떠오릅니다. 언젠가는 내가 눈을 감을 때에는, 마음에 장난 끼 스럽더라도 그 곁에 아예 누워 버리면 좋겠다 하는 마음 생각도 스쳐보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는, 왜냐하면 저들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때로는 헝클어져 버려있는 세상 일반적 사회 질서들을, 그리고 나 자신의 당시의 헝클어져 있던 마음 함께 그래도 저들 세계적 악성들이나 문화인들이, 몸을 비틀면서 그 안 풀리는 매듭들에 크나 작으나 훈기를 불어, 풀어내 주고 있어주었다는 내 마음에 작으나마, 어떤 고마움 생각에서였을 겁니다.

여하튼, 이 세상 안에는 무엇으로든가 라도, 이토록 세상에 숱하게 돌아앉아서 또 그토록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진정으로 마음 저리고 아파하는 주름진 사람들은 아예 눈물마저도 달아 말라버리고, 목줄 아래로 메어오는 지친 마음 덩어리로, 말도 못하고 헉헉거리며 지내고 있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그 누구가 이런, 속 저린 아픔에다가, 따스한 훈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을 것인가, 가끔씩 마음 떠 올 리 군 합니다. 진실한 시인 문화인들이 이런 구석구석의 아픔들을 찾아 내 가며, 맘 풀어 주어야 하는 분주한 발걸음들이 실천적으로 절실히 필요하다고 다짐하여 봅니다.

사람들이야, 절절한 좋은 생각들을 때때로 이렇게 저렇게, 때로는 힘 목 줄 세워서도 품는다 하더라도, 자신 생애 안에 부딛쳐 저서는, 그 진실성, 절대성에 대하여, 그대로 항상 유지하여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듭니다. 자기 주변세서 시시로 명멸하는 환경과 사정들에 의해, 때때로 자기 진실이 빗나가거나, 또는 흐려지고 망가뜨려지구는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 결국 결과적으로는 인간은 이 세상을, 생명력으로 이끌어 가시는 절대 구세주 앞에 그 머리를 수그려 뜨릴 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저들 어떤 이유들이 있든 없든, 결국에는 선해진 저 무덤들 앞에서, 나는 깊고 숙연해지는 마음을 잠시나마 마음 깊게 더 깊게 더듬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