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영광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교회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너나없이 은총을 누린다는 것에 더 마음이 끌린다. 저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찬양하는 데 바빠서 그 선물을 주신 목적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간과해 버린다. 그래서 나온 서글픈 결과가 '자기중심적 기독교'다. 주일 예배에 출석한 평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부탁하면 십중팔구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기껏해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대신 돌아가시게 할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정도일 것이다. 듣기에는 멋진데, 그것이 과연 성경적일까? 말씀에 비추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가르침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라면 그 기독교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목적어는 '나'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목표가 다름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찾을 때 음악이 내 취향과 같은지, 프로그램이 나와 내 가족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을 세울 때 무엇이 나와 내 식구들에게 가장 유리한지 점검한다. 살 집과 탈 차, 입을 옷, 살아갈 방도를 결정할 때 무엇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이것이 현대 문화에 깊이 물든 기독교의 현주소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가 아니다. 마치 인간이 신앙의 대상이라도 하듯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로 끝나는 것은 성경적인 기독교 메시지가 아니다. 말씀이 지향하는 기독교의 진정한 메시지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주님(그분의 길과 구원, 영광과 위대하심)을 열방에 널리 알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신앙의 지향점이 되며 그분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모습이 갖춰진다.

인간은 목표가 될 수 없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중심이 되신다. 구원 사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스겔서의 말씀을 잊지 말라. 주님은 구원을 베푸시지만 인간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역사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그 이름을 만방에 널리 선포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세상에 사는 수많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신다. 충격적인가? 선물의 이면에 숨은 동기가 있었는지, 은혜를 베푸시는 최종 목적이 우리가 아니라는 뜻인지 묻고 싶은가? 성경의 답변은 분명하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그럼 이런 점들을 먼저 짚어 보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 외에 도대체 누구를 찬양하겠는가?

다른 어떤 존재를 찬양하는 그 순간, 주님은 더 이상 온 우주의 영광을 받을실 만큼 위대한 분이 될 수 없다. 그것이 하나님 본연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해나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를 펴든, 거룩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친밀하고 특별하고 놀라운 열정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주님의 위대하심과 온 천하 만백성에게 두루 드러나야 할 그분의 영광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과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분리해서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은혜의 핵심이 빠진 비성경적이고 자아도취적인 기독교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목적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셨다는것은 가장 기초적인 진리에 속한다. 그러나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예외 규정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영적인 연막을 치고 인간적인 위안을 찾아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전략을 제쳐 두는 오류 말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가 제시하는 함량 미달의 전략들(상대적으로 받아들일 만하고, 더 감당하기 쉽고, 편안해 보이는)에 안주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자세에서도 자기 중심적인 태도가 반영된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온 천하로 가라고 명령하신 마태복음 28장 말씀을 보면서 "나는 예외!"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구절을 읽으면서 "딱 내 이야기네"라며 무릎을 친다. 성령님이 땅끝까지 인도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행1:8)에 맞닥뜨려서는 얼른 다른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풍성한 삶을 베푸시겠다는 요한복음 10장 10절을 볼 때는 즉시 "아멘!"으로 화답한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비성경적인) 구분선을 긋게 된다.

기독교 신앙의 특권은 단단히 붙잡은 채, 의무는 은근슬쩍 소수의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떠넘기는 식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 가는 일을 전담할 사람들을 파송해 놓고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하는 셈이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신앙생활 하므로써 적극적인 의미에서 복음을 변질시키고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 이스라엘 백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다른 사람을 나 이상으로 존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오해는 근본적으로 시정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꿈을 온전히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시며 모두를 부르셨다는 것을 편견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