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길을 가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지도를 들고 찾다가 길이 달라지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된다. 더구나 지도도 없이 길을 가다 길이 끊겼거나 공사중이어서 돌아가야 하는 변수가 생기면 본의 아닌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게 된다. 주유소나 편의점에 들러 약도를 물어 봐야만 한다. 미국에 와서 경험하는 신선한 감동 가운데 하나는 길을 물으면 자세하고 친절히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앞장 서서 직접 길을 안내해 주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본의 아니게 친절한 안내가 길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이 뭔가를 착각한 것이다. 약도까지 그려 주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야되는 목적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헤메게 되는 경험도 있다.

이런 경우 길을 잃고 헤메게 된 책임이 당신 자신에게 있지 않다. 당신이 원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길을 잘못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잘못 가르쳐 준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길 뿐만 아니다. 원치 않지만 파산했거나 어떤 일로 좌절감에 빠졌거나 가족 또는 직장 동료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당신 자신이 이런 상황을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쓰레기 같은 생각들로 고생하게 만드는 엉뚱한 방향을 가르쳐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신의 모든 고민거리나 문젯거리도 그 책임을 남에게 지운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당신의 과거 역시 누군가가 '책임' 추궁을 할 수도 있으며, 앞으로의 성장과 발전 역시 당신 어깨에 같은 무게로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대도시에 예전에는 쓰레기장으로 쓰이던 곳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멋진 쇼핑센터가 생겼다. 100년이 넘는 동안 사람들은 이 장소를 '쓰레기장'으로만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부터 약 25년 전,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시민들이 이곳을 아름다운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아름다운 쇼핑센타를 그리면서 쓰레기장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에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고, 깨끗한 흙을 가져다가 오랫동안 쓰레기장으로 사용한 곳에 뿌렸다. 사람들은 지반이 튼튼해질 때까지 거대한 기계로 땅을 다졌다. 그리고 이 위에 어마어마하고 웅장한 쇼핑센타를 지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쇼핑센타는 쓰레기 더미 위에 세운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쓰레기'를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쓰레기가 당신의 마음속에 쌓인 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이 쓰레기를 없앨 수 있다. 정말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이야말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인생의 첫 번째 날이니까. 과거는 끝났다. 여기서 경고할 것이 하나있다. 당신의 마음속에 이미 오랫동안 쌓여진 '쓰레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한 끼 정도 균형 잡힌 식사를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해도 한 끼 정도의 식사로만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다.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쓰레기들을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올바른 정신자세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마음속의 쓰레기는 엄밀히 말해서 치우는 것이라기 보다 덮어 버리는 것이다. '쓰레기'들이 밖으로 삐져나와 당신을 다시 한 번 '쓰레기 같은 생각들'로 고생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쓰레기들'이 완전히 덮힐 때까지 끊임없이 덮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영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이 '쓰레기'의 두께 보다 더 두껍게 쌓이도록 덮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새로운 쓰레기가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밖에 없다. 멀리할 수 없는 친구나 아는 사람을 통해 피치 못하게 쓰레기가 쌓일 수 있으며 신문, 방송 등도 끊임없이 쓰레기를 토해낸다.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쓰레기 통이 되는 것이다. 쓰레기 통을 비우면 얼마안가서 또 가득 찬다. 심리학에서 흥미 있는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 연구는 오래된 쓰레기를 들추거나 일부러 끄집어내어 '흠집을 드러내지'않는 대신 미래의 희망을 다룬다. 문제에 매달리기 보다 해결책에 집중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가 쓴 <실패없는 학습>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좌절과 패배, 실망, 실패밖에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글래서 박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 과거의 문제들과 인격을 다루진 않는다. 긍정적인 방법을 선택해 학생들을 격려해 주면서 그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2,000년 후의 후세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준다. "과거의 일들을 잊고 앞으로 계속 전진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로마 감옥의 사형수 방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생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기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쓰레기 같은 사고라는 함정에 빠지게 될 때, '패배자의 변명'이라는 구실을 생각해 낸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우선 패배자의 변명부터 없애야 한다. "성격이 안 맞는다. 타고난 재주가 없다. 소질과 안 맞는다.조건이 나쁘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뉴스를 봤지만 여자들이 의사, 변호사, 예술가, 기술자를 낳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 예술가, 기술자가 죽었다는 뉴스는 들었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껏 '제 자신때문에' 실패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패자의 변명이라는 쓰레기가 가장 시급한 쓰레기다. 이 쓰레기를 자체 생산하는한 흙으로 덮는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쓰레기를 덮기 때문이다. 성공과 행복은 쓰레기 처리에 달려 있다. 덮는다면 쓰레기더미 만큼이나 큰 쇼핑센타나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