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전적 타락’은 개혁주의 주요 교리 중 하나다. 악과 불의가 창궐하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해설로, 그리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유재석처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착한 이웃들이 적지 않고, 또 뛰어난 학문적 성취나 아름다운 문화적 콘텐츠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이들도 널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개혁주의는 이를 ‘일반 은총’ 교리로 설명한다. 타락한 세상에서 발견되는 진리의 빛과 도덕적 가치와 문화적 열매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의향-곧 하나님의 은혜·은총-으로 말미암는다는 것. 이때의 은총이나 은혜는 구원과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호의(divine favor)’를 의미한다.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인 ‘특별 은총’과 비교해, ‘신자나 비신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베푸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의 ‘일반 은총’이다.

<일반 은총과 문화적 산물(부흥과개혁사)>에서 송인규 교수(합동신대)는 이러한 일반 은총을 “택자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베풀어지는 비구원적 선물로,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를 약화함 없이도 불신 세계에 나타나는 고귀한 것들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각도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론적·실제적 장치”라고 말한다. 이 교리는 칼빈이 본격 제기했지만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19세기 후반 아브라함 카이퍼로 대표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에 의해 신학적 주제로 확립됐다.

이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말하는 ‘보편 은혜’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들은 이 은혜의 성격을 시종일관 구원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일반 은총’은 본질상 하나님의 호의이고, 근본 성격에 있어 비구원적 은택이며, 성령의 일반적 역사에 의해 이뤄지고, 인간의 지정의(知情義) 기능으로 효능을 발휘하며, 인간의 죄는 저지되지만 선한 것들의 영향력이 신장되고, 그 효능은 인간 뿐 아니라 전 피조계까지 퍼져 있다.

그 세 가지 요점은 ①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 편에서의 호의 ②개인과 사회생활에 있어 죄를 억제하심 ③비중생자가 수행하는 시민적 의 등이며, 이는 모든 피조물과 인류 전체 및 인간 개개인, 나아가 언약의 영역 안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이다. 성경에서는 이사야 26장 9-10절, 예레미야 16장 12-13절, 요나 3장 10절-4장 2절, 로마서 8장 32절, 히브리서 6장 4절, 야고보서 1장 17절 등에서 언어적으로 등장하며, 시편 145편 9절과 에스겔 18장 23절, 창세기 39장 5절과 베드로후서 3장 9절, 욥 32장 8절과 역대하 25장 2절, 사도행전 14장 17절 등에서 직접적이진 않지만 도출해낼 수 있다.

‘하나님의 특이한 은혜(the peculiar grace of God)’라며 일반 은총 개념에 씨를 뿌렸던 것은 칼빈이었지만, 체계화한 것은 카이퍼였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 뿐 아니라 인간의 전적 타락과 비신자들의 삶에 나타난 선한 열매 사이의 이론적 불일치 때문에 ‘일반 은총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퍼는 창세 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일반 은총이 포함돼 있었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전 인류 및 피조계 전체와 맺은 언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 은총 덕분에 인류 문명은 발전했고, 인간의 문화도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문화의 완성을 통해 구속사의 종지부를 찍으시리라는 것.

이러한 입장에는 헤르만 바빙크처럼 적극적인 옹호자가 있는 반면, 반 틸처럼 소극적으로 인정하거나 클라스 스킬더와 헤르만 훅스마처럼 아예 일반 은총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20세기 신학자들로는 루이스 벌코프나 존 머리, 얼마 전 <문화와 일반은총(새물결플러스)>을 펴낸 리처드 마우 등도 일반 은총에 적극적 입장이다. 송 교수는 이들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각자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곁들이고,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적 사명으로 논의를 진전시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위 ‘문화 명령(창 1:26-28)’을 통해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셨는데,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방안들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예술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모든 종류의 인공적 노력을 의미하고,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가정·직장·사회라는 각 영역에 참여해 수행하는 모든 일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원론적 태도나 문화적 도피주의를 탈피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일반 은총의 결과물, 즉 ‘문화적 산물’들이 ‘완성된 천국’에서까지 보존될지 여부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러한 입장에 아래 다섯 가지를 이유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천국에서도 이 문화물들을 감상하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이를 활용해 더욱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①문화적 노력과 결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에 속하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열매들을 이유 없이 멸하시지 않으신다 ②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화목 효과는 문화물이 포함된 만물에 미치므로, 얼마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 ③이 세상과 오는 세상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문화적 결실이다 ④그리스도 재림시 불타 없어지는 것은 문화물 자체가 아니라 수반된 죄악적·세속적·사탄적 요소이고, 문화물은 오히려 정화돼 천국에서의 보존을 기다린다 ⑤인간의 문화적 업적이나 결실이 천국에 보존된다는 언급이 성경(계 21:24-26)에 있다.

‘문화물의 천국 보존’의 의미는 인정할수록 천국의 삶에 대한 풍요와 영광스러움이 우리의 심령을 자극하고, 우리의 현실에 있어 좀더 충실하고 헌신적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 자세가 함양되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모토가 공허한 입술치레로 끝나지 않을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이 주제는 이처럼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부터 장차 저 천국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길을 걷도록 종용하는, 신앙생활의 고귀한 지표요 영적 각성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올라가서’,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모든 것이 완벽하게 차려진 천국의 내 집’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누리면서 살 거라는 보통의 상상·기대와는 사뭇 다른 ‘도발적인’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