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은 기독교 영화는 아니지만, 전하는 메시지가 깊어 기독교적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
늑대소년의 키워드는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수십 년간 기다려온 늑대소년의 순수는, 온갖 이기심으로 배신을 일삼는 현 시대에 신선하고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던 순수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세상의 표면적 가치관 속에 잠들어 있는 우리들 내면의 순수함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움’과 ‘기다림’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죄악으로 타락한 인류가 모두 구원받기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그리움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사실 ‘기다림’이란 단어가 낯설지는 않지만, 그리 가깝게 와닿지도 않는 것 같다.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보다는 전권적인 주님께서 죄악된 인간이 변화되기를 기다리신다는 사고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기다림’은 ‘사랑’, ‘은혜’, ‘십자가’처럼 교회 내에서 주로 묵상되는 주제는 아니다. 때문에 기다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이 영화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요양차 가족들과 함께 한적한 마을로 이사 오게 된 소녀는 어두운 창고 속에 몸을 숨긴 채 움츠리고 있는 의문의 늑대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녀의 가족들은 늑대소년을 집으로 데려와 돌본다. 소녀는 인간 문화를 전혀 모르는 늑대소년에게 기다리는 법, 양치하는 법, 옷 입는 법, 글쓰기 등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늑대소년은 소녀가 가르쳐준 것은 무엇이든 그대로 지킨다.
늑대소년에게 소녀는 사랑과 존재 가치를 알려 준 절대적인 존재다. 늑대소년은 소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소녀는 병약하고 가난하여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깊은 절망과 어둠 속에 살아가는 약한 그녀이지만, 늑대소년에게는 가장 완벽하며 위대한 존재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위험에 처하자, 늑대소년은 늑대로 변하여 소녀를 위험에서 구한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정체가 발각되고, 온갖 음모와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쫓겨나게 된다. 극중 늑대소년을 모함하는 지태의 모습에서 ‘누가 과연 짐승인가’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것은 지식과 물질이 아닌, 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소녀 역시 늑대소년을 향한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소녀는 늑대소년과의 추억이 깃든 창고의 책상 위에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쪽지를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소녀는 늑대소년을 잊고 인생을 맘껏 즐기며 살아간다. 소녀는 흰 머리의 할머니가 되어 손녀와 함께 옛 집을 다시 찾아온다. 그녀는 허름한 옛집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나 창고로 향했는데, 창고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창고 안에는 잘 가꿔진 싱그러운 식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창고 안에서 옛 모습 그대로의 늑대소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늑대소년은 그녀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적힌 옛 쪽지를 건넨다. 할머니가 된 그녀와 젊은 늑대소년의 모습은 어쩌면 마음의 모습이 아닐까. 늑대소년은 옛 모습 그대로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여전히 아름다워요”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소녀가 가르쳐줬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말하기와 글쓰기까지 배웠다. 늑대소년이 바라는 한 가지는 소녀가 아름다운 기타 연주를 해주는 것이었다.
늑대소년의 사랑은 위대하다. 그것은 변함없이 믿음으로 기다려 온 사랑이기 때문이다. 극히 현실성 없는 사랑이지만 큰 위로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도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믿는 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인류를 사랑하셨다. 그것은 결점 많은 인간과는 달리 상대성을 띄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이다. 주님은 자신을 잊은 인류를 이렇게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늑대소년의 모습에서 신앙의 여정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먼저는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과 말씀을 지켜 행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늑대소년이 어두운 창고를 화원으로 가꿨듯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주님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잘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남에의 소망을 간직하고 성장해가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늑대소년의 키워드는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수십 년간 기다려온 늑대소년의 순수는, 온갖 이기심으로 배신을 일삼는 현 시대에 신선하고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던 순수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세상의 표면적 가치관 속에 잠들어 있는 우리들 내면의 순수함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움’과 ‘기다림’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죄악으로 타락한 인류가 모두 구원받기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그리움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사실 ‘기다림’이란 단어가 낯설지는 않지만, 그리 가깝게 와닿지도 않는 것 같다.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보다는 전권적인 주님께서 죄악된 인간이 변화되기를 기다리신다는 사고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기다림’은 ‘사랑’, ‘은혜’, ‘십자가’처럼 교회 내에서 주로 묵상되는 주제는 아니다. 때문에 기다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이 영화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요양차 가족들과 함께 한적한 마을로 이사 오게 된 소녀는 어두운 창고 속에 몸을 숨긴 채 움츠리고 있는 의문의 늑대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녀의 가족들은 늑대소년을 집으로 데려와 돌본다. 소녀는 인간 문화를 전혀 모르는 늑대소년에게 기다리는 법, 양치하는 법, 옷 입는 법, 글쓰기 등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늑대소년은 소녀가 가르쳐준 것은 무엇이든 그대로 지킨다.
늑대소년에게 소녀는 사랑과 존재 가치를 알려 준 절대적인 존재다. 늑대소년은 소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소녀는 병약하고 가난하여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깊은 절망과 어둠 속에 살아가는 약한 그녀이지만, 늑대소년에게는 가장 완벽하며 위대한 존재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위험에 처하자, 늑대소년은 늑대로 변하여 소녀를 위험에서 구한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정체가 발각되고, 온갖 음모와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쫓겨나게 된다. 극중 늑대소년을 모함하는 지태의 모습에서 ‘누가 과연 짐승인가’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것은 지식과 물질이 아닌, 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소녀 역시 늑대소년을 향한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소녀는 늑대소년과의 추억이 깃든 창고의 책상 위에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쪽지를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소녀는 늑대소년을 잊고 인생을 맘껏 즐기며 살아간다. 소녀는 흰 머리의 할머니가 되어 손녀와 함께 옛 집을 다시 찾아온다. 그녀는 허름한 옛집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나 창고로 향했는데, 창고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창고 안에는 잘 가꿔진 싱그러운 식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창고 안에서 옛 모습 그대로의 늑대소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늑대소년은 그녀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적힌 옛 쪽지를 건넨다. 할머니가 된 그녀와 젊은 늑대소년의 모습은 어쩌면 마음의 모습이 아닐까. 늑대소년은 옛 모습 그대로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여전히 아름다워요”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소녀가 가르쳐줬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말하기와 글쓰기까지 배웠다. 늑대소년이 바라는 한 가지는 소녀가 아름다운 기타 연주를 해주는 것이었다.
늑대소년의 사랑은 위대하다. 그것은 변함없이 믿음으로 기다려 온 사랑이기 때문이다. 극히 현실성 없는 사랑이지만 큰 위로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도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믿는 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인류를 사랑하셨다. 그것은 결점 많은 인간과는 달리 상대성을 띄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이다. 주님은 자신을 잊은 인류를 이렇게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늑대소년의 모습에서 신앙의 여정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먼저는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과 말씀을 지켜 행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늑대소년이 어두운 창고를 화원으로 가꿨듯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주님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잘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남에의 소망을 간직하고 성장해가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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