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사랑의 빛이 된 한경직’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영화를 보며, 목사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도전도 되어서 좀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이어서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맛깔나게 서술한 저자의 글 솜씨는 편안한 독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인생을 정리하기 보다는, 제가 도전 받은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템플턴 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1991년 12월 한경직 목사님은 1992년도 템플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은 인류를 위해 영성에 공헌하거나 개척자적인 역할을 한 이들에게 수여 되는 의미 있는 상으로, 테레사 수녀, 테제 공동체를 이룬 로저 수사, 소련의 망명 작가 솔제니친,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등이 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한 목사님은 베를린에서 상을 받은 후, 63빌딩에서 축하예배를 드릴 때 이런 인사말을 했습니다.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인 목사님들이 표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10월 말, 한 시사 주간지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는 천주교와 불교에 이어 신뢰도 3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도 부끄러운데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금요기도회 시간에 교인들과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와 같은 목사의 죄가 큽니다. 장로님과 제직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않아서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더러워진 것입니다.” 정말 아파하며 함께 통성으로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음 아픈 것은 여전히 권력욕에 의한 분열과 반목이 교계에 많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먼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한 한경직 목사님 같은 어른이 그리워집니다.
두 번째는 ‘월드 비전’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영락보린원, 영락모자원, 영락경로원, 영락애니아의 집을 설립했고, ‘밥 피어스’와 함께 한국전쟁 중에 거리에서 죽어 가는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전문 구호기관인 월드비전을 창설했습니다. 월드비전은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동지역을 넓혀 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개발·구호 활동을 하는 기독교 국제구호개발기구로 성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후반 한 형제이자 같은 동포이면서 굶어 죽어 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살리자는 뜻에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주창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군량미로 사용되면 안 된다고 말하며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굳은 신념으로 진행을 해서 1990년 쌀 1만 가마가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되었고, 이 사건으로 남북 민간 교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약한 자들, 상한 이웃들을 섬기려는 목사님의 그 마음이 이어지지 않아 가슴 아픕니다. 식량 지원의 문제는 지금도 이데올로기 싸움의 단골로 등장하고 있고, 교회 지도자들은 막힌 담을 허무시는 예수님의 평화를 전하기보다는, 교리와 이념을 바탕으로 고집스러운 행동을 할 때가 있어 속상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혁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더 풍성하게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삶 특히 말년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은퇴 후 좋은 집을 마다하고 남한산성에 있는 18평 단층 건물에서 사셨습니다. 후임자가 부담을 느낄까봐 먼 곳으로 간 것이고, 목사인 아들과 사위를 영락교회 사역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로 만드셨습니다. 세습이나 오해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죠.
또한 병문안을 위해 남한산성을 방문한 목사님이 “모처럼 교계의 중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좋은 말씀 한마디 해 주세요.”라고 하자, 골똘히 생각한 후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말해 교계의 원로들을 당황하게 만든 일화는 유명합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둑으로 가서 생활이 어려워 옷을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고, 템플턴상을 받으러 베를린에 갈 때에도 마땅한 양복이 없었고, 상금으로 받은 102만 달러를 북한선교와 사랑의 쌀 나누기에 쓰도록 영락교회에 헌금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월남한 목사님에게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직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한 실향민이 많기 때문에 나만 먼저 가지 않겠다.”라고 하며 사양했다고 합니다.
본인은 마지막까지 진실하게 살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올라갔지만, 기도하고 산책하는 시간마다 외로웠을 겁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로 기도하신 것처럼, 인간적인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때마다 성령께서 안아주셨겠죠. 그래서 끝까지 승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주일(10월 마지막 주일)을 맞아 그 분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나도 목사로서 남은 생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영적인 몸부림을 쳐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훈 목사(하늘뜻섬김교회 담임) www.servingod.org
“예수 잘 믿으세요”… 한경직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리뷰] 아름다운 빈손 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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