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마르크트 광장 대형 루터조각상 그림자를 안고 서있는
96m의 첨탑 푸라우엔 교회당
1736년 12월1일, 요한 세바스챤 바하가
처음 제작된 파이프 올간을 처음 연주하고 간 교회당,

포격으로 다 파헤쳐졌을 때는
전화에 가족 잃고 마음 상한 온 도시민들마저도, 저마다
폐허 벽 위험 속을 뚫고 뛰쳐나와,
파헤쳐진 돌석 하나하나에 제자리 번호를 부쳐 놓아
언젠가 다시 재건될 교회당을 눈물로 그리면서
통곡을 했다는 루터교회 앞에서
입 다물지 못 해
머리 숙여져 버린 광장 앞이다

헤인리히 브뢸 伯爵이 만들었다는
보리수 다듬은 庭園 아래로
검 녹색 철의 교량 하나가
전쟁 災禍 덮쳐 간 수난 덮어쓰고서도, 남아서
엘베 강을 튼튼히 건너지르고 섰는데

강의 돌아 나가는 멀리 뒤꼬리가 실타래처럼 가물거리고,
<쉴러>시인이 아껴 머물 군 했다 던
5각형의 시인 건물이 바로 머리 윗녘 쪽에 드리워져,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의 그림자를, 하염없이 찾아 내 간다는 것이 거나,
뒷자리에 흘려놓고 간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온전케는 못해 낸, 희미한 그림자라 해도
자기 무늬를 짓는, 자신의 손자국 한두 개,
남겨놓게 되었으면 좋겠네,
바르게 무친, 내 손자국 하나, 두 개 쯤_

2차 대전의 막바지, 폭격폭탄의 세례를 퍼부어 받은 <드레스덴>도시는 90%가 전화로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화하였지만, 문화재 명목으로, 그 포화에도 견뎌 낸, 아니 전쟁 중에서도 고귀한 문화재만은 건져내려고 피해 지내 처 간, <郡主의 행렬>자기 문화와,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교 하나가 포화 중심지에 섰으면서도, 표격을 모면하고 굳게 우뚝 서 있습니다. 19c초반의 독일시인 인, 이름도 긴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쉴러>는, 독일 혁명기에 괴테와 함께 자유의 존엄성을 외쳐, 베토벤의 제9번 <합창교향곡>의 합창 詩歌에 떠오르게 했던 詩人입니다. 당시 그가 자주 드나들던 <브뢸伯爵 의 공원>언덕 곁에는 그의 이름이 조각된 건물이 높다라이 서있습니다. 보리수나무 무리가 고즈넉하게 둘러 서 있는 언덕에, 미풍 섞여 느긋함이 번지는 언덕 아래로, 엘베 강이 푸르게 흐르고, 이곳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광장엔, <마틴 루터>의 동상이 늠름하게 우뚝 서있어, 인간역사 내내, 새로운 개혁사상을 외쳐주는 모습으로 우리들 어깨에 힘을 강하게 불어 넣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