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갈수록 상담학을 배우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듣고, 보고, 알게 된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워싱턴침례대학교만 해도 기독교상담학과에 80여명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만만치 않으며, 현실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대한 해결점이나 조언을 그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거나, 주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 되지, 왜 사람에 불과한 상담가에게 매달리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분명,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시고 치유하시는 분은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목회상담가나 기독교상담가가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이나 기적적인 치유를 늘 경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통과 상처 가운데 아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상담가나 기독교상담가의 역할은 내담자들의 상처와 아픔의 현장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하여, 상처받은 이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와 고통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서, 성서이야기를 통하여 위로와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상담학을 단지 상담의 기능만을 가르치는 학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을 학생들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물론, 어떻게 해야 상담을 잘 할 수 있는 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등을 가르치기는 한다. 그러나 기독교상담학은 단순히 상담 기술만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여러가지 다양한 과목을 통하여, 상담 기술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사람, 문화와 사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경험했거나, 혹은 여전히 하고 있는 모든 이야기들과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과 사건들은 모두 상담학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 가운데, 자신들은 적어도 그러한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다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 그런가. 자기 자신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는 가 말이다.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 먼저 남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급한 것은 아닌 가.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롯한 인간과 이 사회와 문화와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애정이 없는 한, 기술은 한낱 재주에 불과하다. 내담자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말이다.

한편, 우리의 삶은 “기능”적으로 살아가기 보다, “성찰”하며 살아갈 때 어려움과 고통들 속에서도 불평보다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삶이 갈수록 힘들고 고달파지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럴 때일수록, 먹고 살기 위한 “기능”만을 찾기 십상이다. 즉,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에 집착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을 속이게 되고,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되고, 부정을 저지르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그렇다, 우리의 삶을 멋진 기술만으로 살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상담이 예술이듯,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힘들수록 하나님의 약속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진지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무더위 속에서 잠시 생각해 본다.

장보철 목사, 워싱턴침례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 bcchang@wbc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