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현인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 되는 질문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폴론 신전에 신탁을 통해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데, 그 신전 입구에 새겨진 글귀라고 합니다. 이 말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지식탐구 기초질문으로 삼았습니다. 이 질문이 자신을 바르게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한번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리를 걸으며 ‘너 자신을 알라’고 질문을 던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시는 선생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 아십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대답하길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질문을 지금 당신에게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며 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느 때는 자녀로서, 어느 때는 제자로서, 어느 때는 종으로서 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되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 주님은 우리에게 종과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라고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살아라.”(눅12:35)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이 말씀 속에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을듯해 보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보면 대접받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은 아닌듯 합니다. 뭔가 주문을 할 모습도 아닙니다. 이 모습은 아마도 주인이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손님이 방문했을 때 먼지를 닦아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종’의 모습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전통 복장을 보면 통으로 짠 옷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 복장은 일하기 참 복잡한 형상입니다. 그러나 그 복장에 띠를 두른 것은 분명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복장인 한복도 아름답긴 하지만 일을 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은 옷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허리를 질끈 동여매면 그다음은 한결 일하기 좋은 복장으로 탈바꿈합니다.

오늘 당신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 다음 당신의 행동이 무엇일지 짐작이 가야 합니다. 모자를 쓰고, 몸에 치렁치렁 액세서리를 달고, 한 것 맵시를 내고 폼을 잡고 있다면 당신은 잘 못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는, 제자는 대접받는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늘 상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겉치레가 아닙니다. 신앙은 장식품도 아닙니다. 신앙은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양새는 없어 보여도, 허리를 질끈 동이고 여기저기 돌아보며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몸에서 음식 냄새가 배어 나올지도 모릅니다. 소매와 옷깃에 뭔가 항상 묻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당신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고, 주님이 기대하시는 당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바울은 늘 자기를 드러낼 때마다 ‘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싶으십니까? 당신의 삶의 복장을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Ki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