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올 수 없는 이 한밤
오로지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보배로운 시간
하루의 끝자락에서
눈물의 기도 드립니다

나만의 끝방은
벧엘의 전단
기도의 샘터
그 분이 임재하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마음의 커튼을 내리고
엎드려 빌 때
나지막한 음성 내 귀를 쓰다듬고
따스한 눈빛 내 가슴에 젖어 듬니다

씻겨지고 다듬어지고 자유롭고 가벼운 날개로
님향해 힘차게 날아 오르는 나의 항로
내 존재속 잉태한 외러움이 목말라
에오라지 간구합니다

은혜의 생수가
내 가슴에 넘쳐 흘러
동면하던 참 마음이 활짝 깨어나
완성된 생명꽃으로 태어납니다

[묵상: 백 순]
박순애 시인(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밤의 기도’는 기독인이면 누구나 하루의 삶을 마친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지만, 처절할 정도로 간절한 기도제목을 간직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밤이 ‘하루의 끝자락’인양 절망이 앞을 가로 막고 있고, 잠자는 방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듯 이 땅위에 남은 마지막 방인 ‘나의 끝방’에서, 이제는 얼쩔 수 없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마지막같은 밤의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눈물을 흘리며 드리는 ‘밤의 기도’는 여호와께서 결코 모른척 지나치지 아니 할 것입니다. “눈믈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며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편126편5-6절)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시지 아니 하였습니까?

‘밤의 기도’가 더욱 절실한 것은 시인이 드리는 기도제목이 우리의 일상적인 세상살이의 문제보다 더 깊은 ‘마음의 커튼을 내리고’ 고뇌하는 존재론적인 ‘외로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실존적으로 ‘목말라’하고, 영혼적으로 ‘에오라지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밤의 기도’를 통하여 실존적인 목마름에 대한 해갈을 얻게 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의 생수’가 그의 실존적 목마름을 해갈해 주고 그는 ‘완성된 생명꽃’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복음7장37-38절)라고 예수님이 약속하시지 아니하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