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는 불세출의 근대 음악가로 알려지기 보다는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한 사상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가치를 두지않고 독일민족의 혼을 담아 다분히 민족적이고 계몽적인 음악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미미하기는 하지만 윤이상이나 안익태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는 그의 음악세계의 모멘툼을 게르만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과대망상적 포장을 하므로 1차대전의 패배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던 당시의 독일 민중들에게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음악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인들은 언젠가는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었으며 히틀러와 같은 초극 민족주의자가 나타나게 한 것이다. 히틀러는 바그너와 만난적이 없지만 바그너 음악에 심취한 일생을 살았다. 12살 때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히틀러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바그너를 게르만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추켜올리면서 그의 음악을 나치의 모든 행사에 사용한다. 바그너에 대한 히틀러의 사랑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등을 1백번 넘게 관람하고, 악보의 자세한 부분까지 암기할 정도였다. 나치 군인들이 휴가때는 반드시 니벨룽겐의 반지를 관람하도록 까지 했다 하니 가히 광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후대 바그너 주의자들은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나치즘의 친분은 그가 죽은 후의 일이고,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 것도 히틀러 개인이었다는 이유로 바그너 음악에 편견을 갖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맹비난한다. 하지만 그가 반 유대주의자로서 히틀러에 준 사상적 오류의 결과로 인류역사에 끼친 해악까지 덮고 넘어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뿐인가? 그의 음악은 전쟁광들에게 계속 전가보도(傳家寶刀)로 물려지게 된다. 예를 든다면 그의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발퀴레’의 한 대목이 절묘하게 사용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한 장면에서 전쟁광 킬코어 대령이 바그너 음악을 틀면서 베트남의 작은 마을을 공습하지 않든가! 그의 사위가 된 영국인 「체임벌린(H.S.Chamberlain)」이야말로 바그너주의의 신봉자이며 전도사였다. 그는 인종의 순수성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가치이므로 인종적인 혼혈을 피하고 우월한 인간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문명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히틀러의 우생학(優生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아우슈비츠의 비극, 트렘블린카의 비극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런 잘못된 민족주의가 21세기에 다시 환생하는 듯함에 있어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중국은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새롭게 채색하여 극동에서 출발하여 전세계를 공략하고 있으며, 일본은 비록 경제적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옛날 대동아공영(大東亜共栄)의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계속 신사참배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한마디로 제대로 된 민족주의도 아니면서 민족주의입냅시고 흉내내는 가당치 않는 자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기독교 지도자들 까지 덩달아 춤추고 있으니 참 역사에 무지한 자들이 아닐수 없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과 우생적 민족주의는 생극이다. 민족주의자인양 하면서 여론몰이 하는 자들을 향해 따금하게 교훈할 멘토는 진정 한국에는 없는 것일까? 바그너식 민족주의는 다시는 이 세상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