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 현 볼리비아 대통령은 2005년 인디오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당선됐다. 안데스 산자락의 광산도시 오루로 출신인 그는 아이마라 인디오 출신이다.

코카인의 주 재료인 ‘꼬까(coca)’ 잎 재배농장 노동자 출신인 그는 극빈자로 살았다. 넉넉치 않은 형편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볼리비아.
독립 이후부터 1981년까지 총 193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열달에 한번 꼴로 정권이 바뀐 셈이다.

그런 균열 심한 정치 풍토에서 견고한 경제정책이 뿌리 내릴 수 없었다.
악성 인플레이션이 광풍처럼 휘몰아 쳤다.
꿰추아, 아이마라, 과라니 인디오들은 전체 인구비 65%를 차지하고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절대 빈곤 계층이다.

지하자원 부국이면서도 남미 최대 빈국으로 손꼽힌다.

에보 대통령이 사회주의 운동당(MAS)을 이끌면서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꽁께스따도르(Conquestador, 정복자)의 식민지배 이후 500년동안 자행된 수탈과 핍박, 족쇄 채워진 차별의 설움 속에서 가난을 운명처럼 알고 살아온 불행한 삶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약했다.

쇼셜리스모(사회주의)를 통해 소수 기득권자에게 국한되었던 부와 기회를 극빈층에게도 공평하게 나누겠다며 눈에 불을켰다.

대통령과 모든 각료들이 허리띠를 동여매며 솔선수범했다.
대통령의 봉급이 대폭 삭감되었다.
봉급은 Bs 10,800 볼리바레스 ($1,800 달러)다.
수도 라 빠스(La Paz, 평화)의 무리요 광장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불이 켜지고 일과가 시작된다.

과거 정권이 외국 기업에 팔아 넘긴 천연가스, 통신, 전기, 철도, 항공 등 국가 핵심 기간산업의 국영화를 선언하고 환수작업을 벌였다.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은 오직 국민들과 그의 후손들만 사용할 권한이 있다며 내실을 기하려했다.

친서민 정책을 수립하면서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 부패와 전쟁을 선포했다.

표범의 얼룩을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관행처럼 자행됐던 ‘꼬룹션’(Corrupcion, 부패)을 개혁 하기란 대통령 조차 버겁게했다.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 부패, 탐관오리 같은 공무원들은 사리사욕에 빠진채 복지부동 할 뿐이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던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진보적 개혁은 벽에 부닥쳐 난항에 빠졌다.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돈은 치안 불안으로 이어졌다.

강도, 도둑, 사기, 횡령과 폭력은 날로 증가했고 과르데 나쇼날(Guarde Nacional, 군경)은 인권사각 지대에서 신음하는 빈민들의 고통을 다 헤아리지 못한채 제 스스로의 부패의 늪에 갇히고 말았다.

급기야 공권력을 불신하는 풍조가 요원의 불길처럼 볼리비아 전역으로 퍼졌다. 현재는 그 대안으로 ‘후스띠시아 꼼무니따리아’ (공동체 인민재판)가 성행하고 있다.

송아지를 훔친 청년,
가게를 턴 강도,
유부녀를 겁탈한 파렴치범…
부패한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주민 자치제에서 직접 공개 재판하는 제도가 ‘후스띠시아 꼼무니따리아’다.

범법자를 잡은 후,
촌장은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을 다 집합시켜 ‘죄와 응분의 벌’을 각인시킨다.
혐의자를 벌거 벗긴채 죄목을 나열한다.
상식선의 양형이 결정되면 즉석 인민재판이 현장에서 실시된다.

가벼운 잡범은 가죽 채찍으로 매질 당한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성하는 범인, 울부짖는 가족들이 공동체에 용서를 구한다.

태형대신 무거운 돌맹이가 가득 담긴 쌀 푸대를 등에지고 치욕의 거리를 1km 걷게하며 창피를 주기도 한다.

미풍양속을 저버린 파렴치범은 매질 후 나무에 묶여진다.
머리부터 시너를 흠뻑 뿌린 후 불을 던져 화형을 시킨다.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신분의 고하,
‘쩐’의 유무로
법이 줏대없이 함부로 널뛰듯 춤추지 않는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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