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제가 하려는 일은 설교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자유를 설교의 구조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을 일관된 주제로 삼으며, 하나님의 무궁무진하심을 원대한 목표로 삼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스며나오게 하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의 이 책 제목은 <하나님을 설교하라>다. 제목대로라면, 설교자들은 이제까지 무엇을 설교하고 있단 말인가?
“오늘날 사람들이 예배에서 몰아낸 것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주권적인 은혜의 분위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광의 주제, 무한하신 하나님의 원대한 목표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성경적인 설교의 권위와 능력이 훼손되기 딱 좋은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명제화된 계시를 경시하는 주관적 인식론이 있습니다. 모호하게 해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언어학 이론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불편한 것은 슬쩍 넘어가는 대중적·문화적 상대주의도 있습니다.”
“회개가 아닌 웃음이 수많은 설교자들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청중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는다 싶을 때 그 분위기를 재빨리 몰아내기 위해 설교자가 아주 의도적으로 가벼운 재담과 말장난을 하거나 익살을 떠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더 이상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성경을 토대로 한 설교를 듣기 힘들어졌고, 설교는 최근의 화제를 돌아보며 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일로 전락했다.
저자의 주장은 단순하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설교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설교의 은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교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즐겁게(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의 마음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의’가 있고 인간에게는 ‘죄’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는 그 영광이 조롱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래서는 설교의 목적은 실현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설교의 두 가지 장애물, 즉 ‘인간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대적’이라는 객관적이고 외적인 장애물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인간의 교만한 대적’이라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장애물을 모두 해결하셨다. 십자가는 설교와 관련한 객관적 타당성의 토대이자, 주관적인 겸손의 토대이다.
이러한 설교는 전적으로 주권적인 역사를 통해 모든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께 달린 일이다. 설교의 목적을 이루려면, 오직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설교해야 한다.
존 파이퍼는 이후 ‘본보기’를 제시한다.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그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진지했고, 남아있는 설교 1200편을 샅샅이 뒤져도 농담 한 마디가 없었다. 에드워즈의 삶은 하나님이 중심이었고, 그의 신학은 ‘감미로운 주권에 복종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설교는 그 분을 최고로 높였다.
“감정의 강렬함, 논증의 압도적인 무게, 엄숙함이 깊이 배어있는 정신, 경건의 능력에서 풍겨나는 향취, 영혼의 열정,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야말로 에드워즈 설교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그에게 한 가지를 배운다면, 자신의 소명을 진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20년 전 나온 책의 개정판이지만,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내용들이다. 존 파이퍼는 이 책 외에도 <하나님이 복음이다(IVP)>, <하나님을 기뻐하라(생명의말씀사)> 등을 썼다.
존 파이퍼의 이 책 제목은 <하나님을 설교하라>다. 제목대로라면, 설교자들은 이제까지 무엇을 설교하고 있단 말인가?
“오늘날 사람들이 예배에서 몰아낸 것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주권적인 은혜의 분위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광의 주제, 무한하신 하나님의 원대한 목표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성경적인 설교의 권위와 능력이 훼손되기 딱 좋은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명제화된 계시를 경시하는 주관적 인식론이 있습니다. 모호하게 해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언어학 이론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불편한 것은 슬쩍 넘어가는 대중적·문화적 상대주의도 있습니다.”
“회개가 아닌 웃음이 수많은 설교자들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청중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는다 싶을 때 그 분위기를 재빨리 몰아내기 위해 설교자가 아주 의도적으로 가벼운 재담과 말장난을 하거나 익살을 떠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더 이상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성경을 토대로 한 설교를 듣기 힘들어졌고, 설교는 최근의 화제를 돌아보며 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일로 전락했다.
저자의 주장은 단순하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설교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설교의 은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교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즐겁게(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의 마음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의’가 있고 인간에게는 ‘죄’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는 그 영광이 조롱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래서는 설교의 목적은 실현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설교의 두 가지 장애물, 즉 ‘인간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대적’이라는 객관적이고 외적인 장애물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인간의 교만한 대적’이라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장애물을 모두 해결하셨다. 십자가는 설교와 관련한 객관적 타당성의 토대이자, 주관적인 겸손의 토대이다.
이러한 설교는 전적으로 주권적인 역사를 통해 모든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께 달린 일이다. 설교의 목적을 이루려면, 오직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설교해야 한다.
존 파이퍼는 이후 ‘본보기’를 제시한다.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그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진지했고, 남아있는 설교 1200편을 샅샅이 뒤져도 농담 한 마디가 없었다. 에드워즈의 삶은 하나님이 중심이었고, 그의 신학은 ‘감미로운 주권에 복종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설교는 그 분을 최고로 높였다.
“감정의 강렬함, 논증의 압도적인 무게, 엄숙함이 깊이 배어있는 정신, 경건의 능력에서 풍겨나는 향취, 영혼의 열정,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야말로 에드워즈 설교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그에게 한 가지를 배운다면, 자신의 소명을 진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20년 전 나온 책의 개정판이지만,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내용들이다. 존 파이퍼는 이 책 외에도 <하나님이 복음이다(IVP)>, <하나님을 기뻐하라(생명의말씀사)>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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