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여러 해를 함께 하신 분들은 이미 나누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청소년 시절에 신학이외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싶은 대학 과(科)가 성악과, 국문학과, 그리고 건축공학과였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가 지금처럼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아마 저는 성악가나 시인, 아니면 건축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서 자라서 그런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또 곧잘 부른다는 소리도 많이 듣다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은 저보고 ‘너는 참 좋은 테너 목소리를 가졌으니 공부해서 좋은 테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스승 되는 교수님께 레슨을 받도록 주선을 해주셨고 발성 연습 책인 ‘코뤼붕켄’이라는 책도 빌려 주셨는데, 지금도 그 때 연습한 곡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개받은 교수님과 레슨 약속을 했지만 그 당시 집안 재정 형편을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는 터라 부모님께 레슨비를 달라고 하지 못해서 어렵사리 잡은 레슨을 하지 못했던 일이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저도 청소년시절에 문학에 대한 열망, 특별히 시(詩)에 심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남들에 비해 특별히 시를 잘 쓴다거나 시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나 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생각나는 시상(詩想)을 노트에 적어보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여느 책에 비해 시집(詩集)에는 눈길이 더 갔고, 그렇다고 원하는 시집을 살만한 여유는 없었기에 그냥 매만져봤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지금도 책방에 가면 시집 코너는 꼭 들려서 그중 아무 시집이라도 꺼내서 보곤 합니다. 시가 본시 다른 장르에 비해 읽으며 생각하는 생각의 여유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시집을 보고 있으면 다른 책보다 공간적으로도 더 여유 있게 글이 실려 있는데, 아마도 그런 생각과 공간의 여유를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이 건축입니다. 왜 제가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 중에 그 분야에 종사한 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는 집을 새로 지은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님께서 시무하시던 교회가 교회 건축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건축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낙서하는 수준이지만 가끔씩 빈 종이에다가 내가 짓고 싶은 건물 도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또 어쩌다가 진짜(?) 설계도면을 보기라도 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30여년 목회하면서 교회 건축을 할 적마다 현실적인 여건과는 상관없이 제가 짓고 싶은 교회 의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흥분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날마다 우리 교회 건축 현장에 가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흥분되곤 합니다.

이렇게 성악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시인이 되고 싶기도 하고, 또 건축가가 되고 싶기도 해서, 하나님께 그런 제 삶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 셋 중의 하나가 되어 살도록 인도하지 않으시고, 어찌 보면 그것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사가 된 것이 얼핏 생각하면 되고 싶어 했던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되지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그 세 가지를 모두 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악가만큼의 전문적 지식은 없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노래(찬송)하며 살게 하셨고, 매끄럽거나 감동에 찬 글은 아니지만 매주 칼럼과 설교를 글로 쓰게 하시고, 매주 좋아하는 시를 여러분과 나누면서 아주 가끔이지만 졸작의 시를 나누게도 하셨고, 그동안 세 번씩이나 교회 건축에 쓰임 받게도 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택할 수 있었다면 하고 싶은 세가지중에서 하나만을 택하고 좋아하는 나머지 두 가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좋아하는 세 가지 모두를 하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지나간 날에 가졌던 저의 바램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새삼스레 다시 이렇게 글로 나누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귀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도 동일한 은혜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 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새로 지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니까 건축이라는 것이 공사를 마쳤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부서로부터 건물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만 비로소 마치는데 그것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초조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다급해 지기도 하지만 저의 바램보다 더 귀한 것으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우리 교회도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귀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임을 믿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