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법가 철학자 한비는 그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에서 리더 자질에 관해 세가지로 구분했는데 그것들은 ‘하군진기능(下君盡己能), 중군진인력(中君盡人力), 상군진인능(上君盡人能)’으로 삼류는 자기의 능력을, 이류는 남의 힘을, 일류는 남의 지혜를 이용한다는 것으로 이 세가지는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리더쉽에 대해 쉽게 설명해 놓은 것이다. 리더는 리더로서 기본적인 역량을 충분히 갖춘 리더쉽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부하들이 보기에 리더가 무능하게 느끼면 절대적으로 리더의 말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가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에 협력해서 일을 감당해야 할 일의 파트너가 필요하고 그 단체가 잘 조직되어 운영되도록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열정’을 가져야 할뿐 아니라 하급구조의 구성원들을 사랑으로 많은 배려를 하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건강한 리더쉽에 의해 그 속에 속한 구성원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모습에 관한 것을 성경에서 본다면 그것은 고린도전서 1:10절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는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말씀으로 이것은 건강한 리더쉽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리더쉽을 가지고 일을 운영해 나가는 일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며 어느 구성원의 단체에서도 완벽한 리더를 찾을수 없다는 것이다. 리더의 자리는 참으로 외롭고 힘이들고 늘 중압감을 느끼는 자리이다. 끊임없이 주어진 상황에 고민하고 그것에 따른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산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의 리더쉽은 교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의 기업구조와 다른 하나님의 은혜로 각종 다른 인격과 삶의 배경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모두에게 사랑의 마음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주안에서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심령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분을 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가슴을 찌르는 배신을 경험했다해도 그것에 대해 가슴아픈 고통의 가슴을 기도로 쓸어내려야 한다. 그래서 참된 영적 아비와 리더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데 그 이유는 “리더가 현장에서 칼을 빼면 영적 싸움에 지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이 누군가 비방을 하고 모욕을 준다해도 그에게 축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더쉽을 성경속에서 찾아 본다면 그것은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것을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을때’ 그것에 대해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신 후”에 “미리암은 문등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등병이 들었는지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모세”는 그를 바라보고 책망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어 미리암을 위해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 한국역사 속에서도 많은 훌륭한 리더가 있어지만 그 중에 한사람을 말하라면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이다. 그가 임진왜란중에 가장 열악한 상태의 13척의 전함만으로 10배가 넘는 왜수 군전함들과 대치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않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죽기를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세로 스스로 선봉이 되어 전투를 지휘하여 물리친 전투가 “명랑해전”이다. 이전투와 더불어 임진 왜란 당시에 그는 해전에서 23전 23승을 거둔 명장으로 조선시대에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그는 적의 총탄에 맞고 쓰러지면서도 장졸들을 독려한 열정과 하급 부하들을 진심으로 아끼었는 훌륭한 리더 이었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그 동상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칼을 들고 서있는데 그 칼의 길이가 이순신 장군의 키만할 정도이다. 실지로 현충사에 보관 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도를 보면 칼의 길이가 2미터 정도였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닌 장검도와 이순신 장군이 기다란 칼을 들고 서있는 광화문의 동상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리더는 함부로 칼을 빼어서도 안되고 전쟁터에서 리더가 칼을 빼고 전투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 그 싸움은 패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은 일반적인 사회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특별히 가정에서 리더인 아비들은 자녀들에게 건강하고 훌륭한 리더쉽을 보이는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는 자녀를 직접적인 양육이 불가능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맹자는 “아비가 자식에 대해 도(道)를 가르쳐서 실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책망을 하게 된다. 책망을 하게 되면 부자간의 정이 소원해진다”라고 말했다. 가정에서 아비가 변하지 아니하는 아이를 위해 질타를 해서 면책을 주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 삶이 변화하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잘못된 자녀에게 전혀 징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진정한 아비의 모습으로 좋은 리더가 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잘못한 자녀를 보면서도 오랫동안 품고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등을 돌려도 참아주고 그러면서도 또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아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장 값지게 세상에 보여 주신 분은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의도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사람의 변화는 “칼 보다는 사랑”이 더 큰 변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직장을 운영하는 리더나 교회에서 많은 양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목사나 가정에서 사랑의 신뢰의 관계로 리더를 하는 아비들이 훌륭한 리더십을 보이기를 바란다면 “칼 보다는 사랑”으로 리더쉽을 발휘한다면 커가는 생명들이 상처 받지 아니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리더쉽을 가지고 일을 운영해 나가는 일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며 어느 구성원의 단체에서도 완벽한 리더를 찾을수 없다는 것이다. 리더의 자리는 참으로 외롭고 힘이들고 늘 중압감을 느끼는 자리이다. 끊임없이 주어진 상황에 고민하고 그것에 따른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산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의 리더쉽은 교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의 기업구조와 다른 하나님의 은혜로 각종 다른 인격과 삶의 배경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모두에게 사랑의 마음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주안에서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심령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분을 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가슴을 찌르는 배신을 경험했다해도 그것에 대해 가슴아픈 고통의 가슴을 기도로 쓸어내려야 한다. 그래서 참된 영적 아비와 리더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데 그 이유는 “리더가 현장에서 칼을 빼면 영적 싸움에 지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이 누군가 비방을 하고 모욕을 준다해도 그에게 축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더쉽을 성경속에서 찾아 본다면 그것은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것을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을때’ 그것에 대해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신 후”에 “미리암은 문등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등병이 들었는지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모세”는 그를 바라보고 책망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어 미리암을 위해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 한국역사 속에서도 많은 훌륭한 리더가 있어지만 그 중에 한사람을 말하라면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이다. 그가 임진왜란중에 가장 열악한 상태의 13척의 전함만으로 10배가 넘는 왜수 군전함들과 대치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않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죽기를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세로 스스로 선봉이 되어 전투를 지휘하여 물리친 전투가 “명랑해전”이다. 이전투와 더불어 임진 왜란 당시에 그는 해전에서 23전 23승을 거둔 명장으로 조선시대에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그는 적의 총탄에 맞고 쓰러지면서도 장졸들을 독려한 열정과 하급 부하들을 진심으로 아끼었는 훌륭한 리더 이었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그 동상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칼을 들고 서있는데 그 칼의 길이가 이순신 장군의 키만할 정도이다. 실지로 현충사에 보관 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도를 보면 칼의 길이가 2미터 정도였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닌 장검도와 이순신 장군이 기다란 칼을 들고 서있는 광화문의 동상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리더는 함부로 칼을 빼어서도 안되고 전쟁터에서 리더가 칼을 빼고 전투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 그 싸움은 패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은 일반적인 사회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특별히 가정에서 리더인 아비들은 자녀들에게 건강하고 훌륭한 리더쉽을 보이는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는 자녀를 직접적인 양육이 불가능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맹자는 “아비가 자식에 대해 도(道)를 가르쳐서 실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책망을 하게 된다. 책망을 하게 되면 부자간의 정이 소원해진다”라고 말했다. 가정에서 아비가 변하지 아니하는 아이를 위해 질타를 해서 면책을 주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 삶이 변화하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잘못된 자녀에게 전혀 징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진정한 아비의 모습으로 좋은 리더가 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잘못한 자녀를 보면서도 오랫동안 품고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등을 돌려도 참아주고 그러면서도 또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아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장 값지게 세상에 보여 주신 분은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의도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사람의 변화는 “칼 보다는 사랑”이 더 큰 변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직장을 운영하는 리더나 교회에서 많은 양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목사나 가정에서 사랑의 신뢰의 관계로 리더를 하는 아비들이 훌륭한 리더십을 보이기를 바란다면 “칼 보다는 사랑”으로 리더쉽을 발휘한다면 커가는 생명들이 상처 받지 아니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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