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사설'이 나돌면서 경합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양승태(63.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관이 18일 차기 대법원장에 지명됐다. 양 후보자는 인선이 임박해 한때 지명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대두하는 등 주춤하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가장 준비된 대법원장 후보'였다. 지난 2월 대법관 6년 임기를 마친 뒤 대형 법무법인의 숱한 러브콜과 변호사 개업 유혹을 뿌리치고 홀연히 히말라야와 로키산맥 트레킹을 떠난 것도 대법원장 지명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청와대 안팎에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 목영준 헌법재판관의 양자 경합설이 유력하게 전개된 반면, 양 후보자는 막판까지 해외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 후보군에서 밀려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판결과 재판실무에서 그동안 보여준 뛰어난 실력은 물론 풍부한 법원행정 경험에다 조직관리 능력까지 탁월하다는 점을 꾸준히 인정받아왔으며, 지명권자를 고심하게 만든 끝에 결국 최종 낙점을 받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PK'(부산·경남) 출신이라 법조계의 `TK(대구·경북)-고려대' 편중 인사라는 비판에서 한 발 비켜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 후보자는 온건하고 안정지향적 판결로 보수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면서도 바꿔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는 추진력이 어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청와대가 인선 발표에서 "우리 사회의 중심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안정성과 시대변화에 맞춰 사법부를 발전적으로 바꿔나갈 개혁성을 함께 보유했다"고 밝힌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양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 관련 형사사건의 상고심 주심을 맡아 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는 등 법질서 유지에 무게를 둔 판결을 내렸다. 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과 관련, 북한의 법적인 지위를 놓고 대법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 "북한의 실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성을 종전과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굳건히 견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2009~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맡아 엄정한 법집행으로 6·2 지방선거 등을 무사히 치렀으며 내년부터 헌정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재외국민 선거 준비를 차질 없이 수행함으로써 행정업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내년이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중앙선관위원장 경력도 플러스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온 양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교수,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서울민사지법 부장, 서울지법 파산수석부장, 부산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엘리트 법관의 길을 걸어왔다.
재판을 담당하는 일선 법관로서의 `야전 경험'과 사법정책을 입안하고 다루는 사법관료의 `관록'에서 양 후보자만큼 적절히 조화된 법관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이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실력자'라는 종합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덕분에 2005년 대법관 청문회 당시 국회로부터 "30여 년간 법관으로 근무하며 너무 무난한 것이 오히려 흠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는 평가와 함께 후한 합격점을 받기도 했다. 유력 후보군에 속해 있으면서도 대법원장 인선을 앞두고 홀연히 해외로 나가 최근까지도 트레킹에만 몰두하는 등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모습으로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