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콜럼비아침례교회 담임 목회자이신 짐 바컴 목사님을 만나서 교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버지니아 폴스처치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남북 전쟁 당시에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재건한 교회입니다. 미국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지도층이 거주하는 워싱턴 근교에서 오랜 세월 사역했던 교회이기에 미국의 전형적인 지역 유지들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5년 전에 부임한 젊은 목사인 짐 목사님이 오랜 세월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형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콜럼비아침례교회는 지난 40년간 이민자들을 위한 교회를 운영해 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9개 언어로 예배를 드리며 14개의 이민자 회중이 콜럼비아침례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다문화 선교에 대한 인식과 신학이 전혀 없었던 시절부터 선구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담임 목회자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도 꾸준히 다양한 언어권 사역을 추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특히 콜럼비아침례교회는 미국에 있는 한인침례교회 협의회에서 교단 소속 신학교 외에 유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워싱턴한인침례신학교를 30년간 키워 왔던 교회이기도 합니다.
어떤 회의 장소에서 만나서 5분간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동안에 마치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가까워 졌습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서 하루를 함께 지내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긴 말이 필요 없는 대화가 빠르게 진행 되는 것을 서로 느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화는 곧 다문화 사역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인종 다문화 사역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자 말자 짐 목사님은 자신이 교단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교회를 칭찬하면서 다문화 사역의 모본을 보이는 교회라는 언급을 할 때 짐 목사님이 물었다고 합니다. 왜 한빛지구촌교회가 다문화 사역의 모본이라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그 분들은 한국 사람들의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출석하는 교회가 백인들이 모이는 교회라는 사실과 한빛지구촌교회가 한국인이 모인다는 사실이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짐 목사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비전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계획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비전과 뜻이 있어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도 배울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다문화권 사역을 한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의 체험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을 압니다. 우리는 40년을 변함없이 다문화 사역을 해온 콜럼비아 교회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자 짐 목사님은 40년의 경험이 다 좋은 것은 아니고 그 경험 때문에 어렵고 무거운 짐도 많이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콜럼비아 교회가 겪는 어려움은 7부 능선을 지나다가 겪는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1부 능선도 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이 겪는 어려움조차 우리에게는 부러움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보수적인 교회를 젊은 목사로서 이끌고 가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콜럼비아침례교회가 무척 보수적인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콜럼비아침례교회가 미래를 지향할 줄 아는 디엔에이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콜럼비아침례교회는 남북 전쟁에서 남부의 머리 역할을 하는 버지니아 주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교인들이 모여서 이룬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노예 해방을 지지했던 교회였다고 합니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말자 당시 담임목사님이 남부 사설 과격단체인 모스비 집단에게 테러 공격을 받아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흩어지지 않고 목사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살해 위협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교회를 지켰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늘 그 당시 이야기를 회고하면서 앞서가고 미래를 향한 결정을 내리는 묘한 특성을 가진 교회라고 들려주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뜻을 나눌 수 있는 목회자, 함께 비전을 꿈꾸고, 함께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교회를 찾은 듯 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2007년 3월 11일)

/글 장세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