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13세. 서울 등촌초등학교 6학년. 지난 1월 14일 백혈병으로 짧은 삶을 마친 한 아이가 남긴 이력의 전부입니다. 정표는 투병을 하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팔에 힘이 없어 자기가 쓸 수 없을 때는 엄마에게 불러 주어 대신 써달라고도 했답니다. 일기는 정표에게 희망이고 자기가 살아 있다는 표시였기에 그는 힘이 들수록 자신의 고통을 빠짐없이 일기장에 기록하려고 했답니다. 언젠가 병이 낫고 작가가 되면 자신의 투병기를 소설로 쓸 계획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표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표의 일기는 숨지기 사흘 전인 지난 11일에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소개된 정표의 투병 일기는 어떤 글보다도 더 감동적이어서 정표의 일기 일부를 소개합니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2005년 4월 20일) 정표의 투병 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손이 떨리고 글씨가 이상하다. 오랜만에 연필을 잡아서인가? 3월 30일 새벽에 코피가 심하게 나고 토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왔다. 그러다 저녁쯤 백혈병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 무균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머리를 밀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 봄바람, 봄꽃, 봄의 풍경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발병 이틀 후에 맞은 생일날 쓴 일기입니다.
“4월 22일, 1년을 기다린 기쁜 날. 나의 생일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백혈병이란 놈이 내 몸속에 들어와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 1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데….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나는 왜 이런 인생일까?”

정표가 골수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은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인 10월 27일, 정표는 자신에게 이식될 골수를 보는 순간 “감격과 설렘으로 화산이 폭발하는 듯 벅찼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골수를 기증해 준 이름 모를 일본인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저씨, 저에게 소중한 골수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골수를 주지 않으실 때도 있었는데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참 어려운 결정이셨을 텐데…. 정말 제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어요. 아저씨가 주신 골수 소중하게 받았고, 잘 살게요.”

이식수술을 하면 금방 나을 줄 알았지만 이어지는 항암치료로 인해 목이 붓고 피를 한 덩이씩 토해 내더니 2005년 말에는 피 찌꺼기가 요도를 막아 피오줌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얼마나 아팠는지 정표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12월 29일, 긴급 상황임. 오늘 새벽도 한숨 못 잤음. 초음파 검사 결과 출혈성 방광염이라 소변 줄을 꽂았는데 너무 아팠음. 정신없이 울고, 꽂고 난 후에도 거의 경기 일으킴. 골수검사 하는 것보다 훨씬 아파 정신없이 소리 지르고 진정이 안 됐음.” 일기의 글자도 되도록 줄여서 쓸만큼 많이 아팠나봅니다.

계속되는 투병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정표는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2006년 5월 31일,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너무 아파서 펑펑 울고 진통제를 먹었다. 너무너무 힘들다. 진짜 괴롭다. 심할 땐 죽고 싶다. 아파서 기지개도 제대로 못 켠다."“2007년 1월 3일, 으아악! 이러다가 1주일 안에 난 어떻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심해지고 있고 입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난 이제 한계다. 엄마가 아침에 쌀을 갈아서 미음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도 아프다. 우유도 아프고 물도 아프고 식염수도 아프고 죽을 것 같다. 누가 좀 살려 줬으면 한다.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만 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8일 뒤인 1월 11일, 정표는 자신의 마지막 일기가 된 그날의 일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긴장. 수혈도 받고 촉진제도 맞았는데 수치가 갑자기 떨어졌다. 오전엔 너무 힘들어서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입이 조금씩 나아서 오늘은 갈비탕을 사다 먹었다. 씹기는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뭐 좀 먹은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이렇게 힘들게 이겨 내면 다시 신나게, 즐겁게 보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표의 바램과는 달리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다음날, 마지막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사의 권고로 병실에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정표야 사랑한다. 너 너무 멋졌어. 최고였어. 잘했다.” 엄마의 말에 정표도 힘겹게 대답했답니다. “고마워.” 그 후 정표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이틀 후인 지난 1월 14일 오전 8시 14분, 13년의 짧은 삶을 마쳤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정표의 글을 소개하며 달린 제목, “살아 숨 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는 정표가 골수이식 수술 후 무균실에 있을 때 자기 엄마에게 한말이랍니다. “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학원에서 과외 받는 친구들 전혀 부럽지 않아. 왜냐고? 난 병원이라는 학교에서 소아백혈병이라는 전문 과목을 1년 동안 온몸으로 배웠고, 숨 쉬고 살아 있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았잖아. 난 친구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1억 원짜리 고액 과외를 받았어. 파란 하늘, 맑은 공기 이런 걸 느끼기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학교 다닐 때는 운동장의 흙을 밟고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흙이 너무 감사해. 한 줌 흙을 떠서 혹시라도 거기서 지렁이가 나오면 ‘오! 아가’ 하며 살아 꿈틀대는 모습에 감격할 거야.”

더 갖지 못해 속상하고, 더 이루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살아있음을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은 정표가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날입니다. 정표가 살아있다면 오늘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날입니다. 정표가 살아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봅니다.
“숨 쉬고 살아있는건 대단하고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