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들의 분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러 한인교회들의 분열사를 종합해 보면, 성도의 절대적인 지침이 되는 성서해석이나 교리적인 불일치보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문제에 연유한 것이어서 필자의 심경은 퍽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거룩한 교회의 이름’ 아래에서 이런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 필자가 신학생일 때 ‘한국교회사’의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고 정년을 맞이하신 스승님을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 한국교회의 분열은 어떤 것에 원인이 있는지요?” 필자는 내심 ‘우리 초대교회사에 큰 시험이 되었던 일제 우상숭배’가 그 이유가 된 것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는데 교수님의 답변은 의외였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분열 특히, 이민교회의 분열은 우리 모두가 아직 신앙이 미성숙한데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하며 유럽과 여러 신앙의 역사가 깊은 나라들과 비교하여 설명을 하셨는데 아직 생각이 짧은 필자에게 적절한 설득력을 주셨다.
그분의 답변을 듣고 여러 날 묵상을 하며 계속 고민을 했다. ‘이제 겨우 150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 역사에 우리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짧은 시간에 성숙을 이룰 수는 없을까?’ 단시간에 성숙해진 사례를 생각해 보다가 필자가 병원에서 환자를 위로하는 임상목회를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 성숙해 지는 예를 보았다.
특별히 환자의 경우는 큰 수술과 암과 같은 힘든 병을 경험하면서, 또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위로교육을 받았던 봉사자(비환자)들은 의과대학생들의 수업인 ‘신체해부학실습’을 참관하고는 생각들이 많이 성숙해 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꼭 고난을 당하는 것 말고 성숙해 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어느 노 목사님께서 자신이 비교적 일찍 성숙해진 간증을 들려주셨다. 당시는 6.26 직후라 많은 가정들이 자식을 잃어 대가 끊어지는 이웃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자녀들을 잃지 않은 집에서는 자녀들을 모두 잃은 집에 양자로 보내어 대를 이어 주고, 먹고 살기가 힘든 자신들의 식솔들에 대한 부담도 줄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차남이셨던 그 목사님의 가정은 다행히 형제들이 무사했는데, 어느 날 아버님이 자식을 잃은 이웃 아저씨와 심각하게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들 잠이든 형제들 사이에서 부모님이 곧 큰 결정을 내리실 것 같은데,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될 가능성을 짐작한 이제 10살 남짓 어린 자신으로서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인 채 토끼귀가 되었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큰 결정을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참 후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라는 어머님의 말에 아버님께서도 긴 한숨을 내쉬며 “어려워도 내 자식은 내가 키워야 후회가 없겠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부모님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자기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두운 이불 속에서 소리는 못 지르고 대신 가슴 북 바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새운 그 소년은 새벽 일찍 일어나 물동이를 지고 우물 물을 떠 아직 잠이든 부모님 몰래 아궁이 솥에 물을 붇고 불을 지폈다. 평소에 부모님의 고함을 들으며 억지로 갖다 부었던 양동이가 그날은 그렇게 가볍고 고맙게 느껴졌으며 본인이 그때부터 철이 일찍 들었다는 소회를 듣고 필자는 ‘사랑이 사람을 성숙하게 함’을 실감했다.
한인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서로의 어려운 고난에는 변함없는 위로자가 되어주고, 어떠한 위기 앞에서도 서로에게 최선의 사랑을 다한다면 우리는 성숙(온전)해 진다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격려하고 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 이 말씀대로 교회구성원들이 ‘사랑의 성숙’을 이룬다면 그동안 가지치기로 몸둥이만 있었던 나무에 비로소 열매는 맺힐 것이고, 그것에 비례하여 우리 이민사회도 성숙해질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성숙이 동족선교로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민족의 통일도 미래도 서서히 무르익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의 문제가 곧 개인의 문제인 것같이 한 민족(교회와 단체 등)의 목표와 평가도 곧 구성원들의 성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성숙여하에 동족구원의 시간이 당겨질 수도 늦어질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하자!
박상원 목사_SAM 시애틀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거룩한 교회의 이름’ 아래에서 이런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 필자가 신학생일 때 ‘한국교회사’의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고 정년을 맞이하신 스승님을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 한국교회의 분열은 어떤 것에 원인이 있는지요?” 필자는 내심 ‘우리 초대교회사에 큰 시험이 되었던 일제 우상숭배’가 그 이유가 된 것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는데 교수님의 답변은 의외였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분열 특히, 이민교회의 분열은 우리 모두가 아직 신앙이 미성숙한데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하며 유럽과 여러 신앙의 역사가 깊은 나라들과 비교하여 설명을 하셨는데 아직 생각이 짧은 필자에게 적절한 설득력을 주셨다.
그분의 답변을 듣고 여러 날 묵상을 하며 계속 고민을 했다. ‘이제 겨우 150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 역사에 우리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짧은 시간에 성숙을 이룰 수는 없을까?’ 단시간에 성숙해진 사례를 생각해 보다가 필자가 병원에서 환자를 위로하는 임상목회를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 성숙해 지는 예를 보았다.
특별히 환자의 경우는 큰 수술과 암과 같은 힘든 병을 경험하면서, 또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위로교육을 받았던 봉사자(비환자)들은 의과대학생들의 수업인 ‘신체해부학실습’을 참관하고는 생각들이 많이 성숙해 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꼭 고난을 당하는 것 말고 성숙해 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어느 노 목사님께서 자신이 비교적 일찍 성숙해진 간증을 들려주셨다. 당시는 6.26 직후라 많은 가정들이 자식을 잃어 대가 끊어지는 이웃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자녀들을 잃지 않은 집에서는 자녀들을 모두 잃은 집에 양자로 보내어 대를 이어 주고, 먹고 살기가 힘든 자신들의 식솔들에 대한 부담도 줄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차남이셨던 그 목사님의 가정은 다행히 형제들이 무사했는데, 어느 날 아버님이 자식을 잃은 이웃 아저씨와 심각하게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들 잠이든 형제들 사이에서 부모님이 곧 큰 결정을 내리실 것 같은데,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될 가능성을 짐작한 이제 10살 남짓 어린 자신으로서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인 채 토끼귀가 되었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큰 결정을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참 후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라는 어머님의 말에 아버님께서도 긴 한숨을 내쉬며 “어려워도 내 자식은 내가 키워야 후회가 없겠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부모님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자기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두운 이불 속에서 소리는 못 지르고 대신 가슴 북 바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새운 그 소년은 새벽 일찍 일어나 물동이를 지고 우물 물을 떠 아직 잠이든 부모님 몰래 아궁이 솥에 물을 붇고 불을 지폈다. 평소에 부모님의 고함을 들으며 억지로 갖다 부었던 양동이가 그날은 그렇게 가볍고 고맙게 느껴졌으며 본인이 그때부터 철이 일찍 들었다는 소회를 듣고 필자는 ‘사랑이 사람을 성숙하게 함’을 실감했다.
한인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서로의 어려운 고난에는 변함없는 위로자가 되어주고, 어떠한 위기 앞에서도 서로에게 최선의 사랑을 다한다면 우리는 성숙(온전)해 진다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격려하고 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 이 말씀대로 교회구성원들이 ‘사랑의 성숙’을 이룬다면 그동안 가지치기로 몸둥이만 있었던 나무에 비로소 열매는 맺힐 것이고, 그것에 비례하여 우리 이민사회도 성숙해질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성숙이 동족선교로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민족의 통일도 미래도 서서히 무르익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의 문제가 곧 개인의 문제인 것같이 한 민족(교회와 단체 등)의 목표와 평가도 곧 구성원들의 성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성숙여하에 동족구원의 시간이 당겨질 수도 늦어질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하자!
박상원 목사_SAM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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