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최첨단 비활자계(非活字系) 도구인 컴퓨터와 핸드폰 등으로 의사소통이 더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갈수록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공동체의 소속감’과 ‘자기정체성’은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독교는 인간회복의 영원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창1:27)는 선언과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셨다”(시8:5 공동번역, 개역에는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로 번역됨)는 본래적 인간 해석에 주목할 때이다. 결국 역사의 마지막 문제는 인간이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어떤 주택에 사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무엇과 동일화(Identification)하느냐’로 귀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어릴 때 부러워하고 닮으려고 하는 모델을 부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부모만큼 자라면 부모보다 더 나은 ‘모델’을 찾게 된다. 우리가 평생을 바라보고 따를 ‘인간의 모델’을 크리스천은 예수에게서 본다. 그리스도는 크리스천의 인격과 삶의 규범(Norm)이고 이 규범을 보고 그의 모습을 우리 마음 속에 새기고 재현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형성의 윤리’(D. 본회퍼)이다. 그가 태양이라면 우리는 그 빛을 반사하는 달이어야 한다. 그를 존경할 뿐 아니라, 참 인격으로 ‘믿고 따르면’ 우리도 점점 그를 닮게 된다. 그래서 루터는 크리스천을 ‘작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작은 그리스도’란 말은 우리가 모두 작은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예수가 가졌던 자기의식 중 ‘부름을 받았다는 각성’을 살펴보면 그 길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시골 청년이었지만, 자신이 오래 전부터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로 부름받았음을 자각했다. 폭력과 죄로 절망한 백성을 건질 자는 바로 ‘나’라는 자의식을 가졌을 때 30년 동안 길들여온 대패와 망치를 내려두고 구도의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이 돈인가? 물질의 힘인가? 권력과 명예인가? 아니다. ‘내가 역사의 주체다’라고 하는 자각이 역사를 만든다. 힘없고 상처잎은 절망의 사람들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다”, “지금부터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행복과 참 생명은 부름을 받은 너희들을 통하여 이룩된다”라고 가슴마다 ‘피택의식’의 불을 달아주었을 때 그 ‘보잘것 없었던 인간들’은 로마제국(죄의 권세)을 이겼던 것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피택의식’과 ‘스타의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스타의 영웅의식은 개인의식의 확대요 귀족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부름받은 자의 피택의식은 단체의식, 교량의식, 중보의식으로 충만하여 헌신과 사랑이 목적이 된다. 영웅의식은 헌신의 대상이 희미하므로 결국 자기 신화화(교만)로 전락하는 데 비하여, 피택의식은 헌신의 대상이 뚜렷하므로 자신을 만드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겸손하게 온전히 충성한다. 그래서 요즈음 세태는 국가와 민족이 주는 소속감과 정체성은 점점 퇴색하는 듯하다.
우승 후보로까지 평가받았던 프랑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한 채 부끄러운 귀국을 해야 했는가? 그들에게는 스타의식은 있었지만 피택의식이 없었기에 상식 밖의 행동으로 내분을 자초했다. 그들의 마음에는 동료와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원하는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있게 한 국가보다는 명예와 돈을 가져다 준 유명한 클럽팀의 몸값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대표팀의 훈련도 거부했다. 그러나 세계축구의 변방나라요, 몇 십 년 만에 월드컵무대를 밟은 것 자체를 영광으로 여긴 나라들의 선수들은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야 할 국가의 분명한 꿈이 있었기에 놀라운 투혼과 발전된 성과를 거둠으로 큰 감동과 찬사를 받았다. 분명 그들에게서는 영웅주의자들에게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순수한 피택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도 이렇게 자신들이 그 분의 뜻에 부름을 받았다는 피택의식을 가진 이들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각 민족들에게 임하게 하는 구체적인 아젠다를 만들 때, 부름받은 자들로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특별히 미주에 사는 크리스천들이 우리 민족에 대한 평화와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피택의식과 영적각성을 가진다면, 진실로 복음화된 코리아는 세계모든 민족 위에 크게 빛날 것이며 하나님의 세계선교도 완성되어 갈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동족구원의 뜻에 ‘부름을 받았다고 자각’을 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격려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한14:12)
(박상원 목사_SAM시애틀) samseattle@samf.net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어릴 때 부러워하고 닮으려고 하는 모델을 부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부모만큼 자라면 부모보다 더 나은 ‘모델’을 찾게 된다. 우리가 평생을 바라보고 따를 ‘인간의 모델’을 크리스천은 예수에게서 본다. 그리스도는 크리스천의 인격과 삶의 규범(Norm)이고 이 규범을 보고 그의 모습을 우리 마음 속에 새기고 재현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형성의 윤리’(D. 본회퍼)이다. 그가 태양이라면 우리는 그 빛을 반사하는 달이어야 한다. 그를 존경할 뿐 아니라, 참 인격으로 ‘믿고 따르면’ 우리도 점점 그를 닮게 된다. 그래서 루터는 크리스천을 ‘작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작은 그리스도’란 말은 우리가 모두 작은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예수가 가졌던 자기의식 중 ‘부름을 받았다는 각성’을 살펴보면 그 길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시골 청년이었지만, 자신이 오래 전부터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로 부름받았음을 자각했다. 폭력과 죄로 절망한 백성을 건질 자는 바로 ‘나’라는 자의식을 가졌을 때 30년 동안 길들여온 대패와 망치를 내려두고 구도의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이 돈인가? 물질의 힘인가? 권력과 명예인가? 아니다. ‘내가 역사의 주체다’라고 하는 자각이 역사를 만든다. 힘없고 상처잎은 절망의 사람들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다”, “지금부터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행복과 참 생명은 부름을 받은 너희들을 통하여 이룩된다”라고 가슴마다 ‘피택의식’의 불을 달아주었을 때 그 ‘보잘것 없었던 인간들’은 로마제국(죄의 권세)을 이겼던 것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피택의식’과 ‘스타의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스타의 영웅의식은 개인의식의 확대요 귀족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부름받은 자의 피택의식은 단체의식, 교량의식, 중보의식으로 충만하여 헌신과 사랑이 목적이 된다. 영웅의식은 헌신의 대상이 희미하므로 결국 자기 신화화(교만)로 전락하는 데 비하여, 피택의식은 헌신의 대상이 뚜렷하므로 자신을 만드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겸손하게 온전히 충성한다. 그래서 요즈음 세태는 국가와 민족이 주는 소속감과 정체성은 점점 퇴색하는 듯하다.
우승 후보로까지 평가받았던 프랑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한 채 부끄러운 귀국을 해야 했는가? 그들에게는 스타의식은 있었지만 피택의식이 없었기에 상식 밖의 행동으로 내분을 자초했다. 그들의 마음에는 동료와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원하는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있게 한 국가보다는 명예와 돈을 가져다 준 유명한 클럽팀의 몸값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대표팀의 훈련도 거부했다. 그러나 세계축구의 변방나라요, 몇 십 년 만에 월드컵무대를 밟은 것 자체를 영광으로 여긴 나라들의 선수들은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야 할 국가의 분명한 꿈이 있었기에 놀라운 투혼과 발전된 성과를 거둠으로 큰 감동과 찬사를 받았다. 분명 그들에게서는 영웅주의자들에게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순수한 피택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도 이렇게 자신들이 그 분의 뜻에 부름을 받았다는 피택의식을 가진 이들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각 민족들에게 임하게 하는 구체적인 아젠다를 만들 때, 부름받은 자들로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특별히 미주에 사는 크리스천들이 우리 민족에 대한 평화와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피택의식과 영적각성을 가진다면, 진실로 복음화된 코리아는 세계모든 민족 위에 크게 빛날 것이며 하나님의 세계선교도 완성되어 갈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동족구원의 뜻에 ‘부름을 받았다고 자각’을 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격려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한14:12)
(박상원 목사_SAM시애틀) samseattle@samf.net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