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종교인들이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를 촉구한 가운데 “단순히 북한 주민의 생존만을 위한 차원의 대북지원은 우리 사회 내부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분명히 한계가 있으므로, 분배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남북관계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단계적·순차적 개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북한의 식량난과 대중국 의존’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스님) 제41차 전문가포럼에서 강동완 책임연구원(통일연구원)이 밝힌 것이다.

▲평화재단 전문가포럼에는 대북지원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평화재단 제공
강동완 연구원은 먼저 대북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강 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식량위기 상황이 악화되면서 1990년대 후반과 같은 대량아사 사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대북지원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보다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와 ‘중단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구조로 대립만 하면 해결책이 없으며,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한다면 왜, 무엇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 공감대와 정책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처럼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 대북지원이 오히려 전략적으로 남북관계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패러다임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단호한 대처와 굳건한 안보태세 강화라는 하드파워와 더불어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라는 소프트파워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목적과 시기, 방법과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지원의 분배 투명성과 효과 면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강 연구원은 현 정부 들어서도 이를 냉철히 평가하고 개선과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인도적 지원과 관련, 우리 사회에서 ‘순수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점은 그동안 인도적 지원에 다른 불순물이 첨가됐음을 반증한다”며 “인도적 지원에는 지원물자가 수요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도록 감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수적이고, 사전에 명확한 규정과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한 강동완 연구원. ⓒ평화재단 제공
무엇보다 인도적 지원의 목적은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조건이나 이해관계보다는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 연구원은 강조했다. 지원 대상도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반드시 구분할 수 있는 모니터링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취약 계층과 지역을 지정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북지원단체나 종교단체들을 통한 우회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나서서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급식소를 설치하고, 취약계층인 영유아 및 청소년들을 위한 탁아소와 유치원, 학교 등에서 급식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인도적 지원을 수용한다면 ‘인도주의 원칙’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이제 남북한 사이의 지원에도 ‘특수성’보다는 인도주의 원칙이라는 국제규범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을 도우면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지원’과의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또 북한에 식량을 주는 일이 우리에게 손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책목적 달성과 국익을 위해 다양한 목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무엇보다 남북한 통일과정의 전략적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시장경제 촉진과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촉진할 수도 있고, 영유아를 포함한 아동의 영양실조 등을 막아 향후 남북한 통일시 남북 주민간의 심각한 신체적 불균등을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강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온정 피로증(compassion fatigue)’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정 피로증이란 너무 흔하거나 지속되는 불행에 동정심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어떠한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둔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식량난 지속 과정에서 그 심각성이 우리의 판단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는 문제인데, 북한 식량난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데도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이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지 않아 그 위험도가 축소 또는 은폐될 수 있다”며 “온정 피로증이 확산돼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빈곤과 기아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 그만큼 남북한 통합과 통일을 위한 기반 역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