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래 찾아온 두 번째 연방대법관 지명 기회에서 또다시 친낙태, 친동성애 성향의 인물을 선택해 보수 진영의 우려를 낳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최근 은퇴 의사를 밝힌 존 폴 스티븐스(90) 대법관의 후임으로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50) 법무부 송무담당 차관을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에 이어 역시 여성이다.

케이건 후보자는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 법대학장과 현직인 법무부 송무담당 차관직에 오른 인물로, 임명이 확정될시 미국 역사상 네 번째 여성 대법관에 취임하면서 총 9명의 대법관 중 이제껏 최대치인 3명이 여성이 되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케이건 후보자의 지명은 미국 내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작년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 당시 히스패닉 최초의 대법관 탄생이라는 역사적 성과와 여성 대법관이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진보 성향, 구체적으로는 친낙태·친동성애 성향에 반대했던 보수 진영은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비슷한 성향의 케이건 후보자에게도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케이건 후보는 낙태 옹호단체와 동성애자 권익 보호단체와의 협력 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후보를 지명하면, 상원 법사위원회가 인준 투표를 통해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대법관을 선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10일 발표 이후, 미국 내 낙태 반대단체들과 전통적 가족 보호단체들은 일제히 케이건 후보자의 지명을 비판하고 상원 인준 저지에 나설 것임을 표명했다.

생명을위한미국민연합(AUL)의 차메인 요이스트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관 지명을 통해서도 미국을 친낙태, 친동성애화하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비주류 사회의 어젠다를 미국민 전체에 부과하려는 이같은 시도는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위한가톨릭가족(Catholic Families for America)의 케빈 로버츠 총무 역시 “대통령은 케이건 후보의 지명을 통해 생명과 가족을 상대로 하는 투쟁에 전의를 드러낸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늘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그는 전통적 결혼과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항상 적대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있은 즉시로, 상원 법사위에 제출할 전국민 탄원서 마련에 돌입했다. 최근 이뤄진 설문 조사들에 따르면 미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낙태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건 후보자의 성향이 이처럼 문제시되는 이유는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이 갖는 중대한 역할 때문이다. 연방대법관은 헌법을 해석하고 이에 따른 판결을 내림으로써, 미국의 가치 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리다. 또한 은퇴하지 않는 이상 종신직이므로 한번 임명되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기도 하다. 따라서 친낙태, 친동성애 성향의 대법관 수가 늘게 될 경우 향후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보다 포용적인 판결이 내려질 위험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관 후보자의 성향은 종교보다도 갖는 의미가 더 커서 미국민의 대다수인 66% 이상이 최근 갤럽 조사에서 종교보다는 대법관의 가치관과 성향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현재 유일한 개신교인인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의 은퇴로, 유대교인인 케이건 후보가 그의 뒤를 이을시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가운데 단 한 명의 개신교인도 없는 ‘포스트-프로테스탄트’ 시대가 열리게 됨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계에서조차 케이건 후보의 종교보다는 진보적 성향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개신교인이지만 대법원 내 진보파의 리더격이었던 스티븐스 대법관의 경우처럼, 종교와 성향이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총 9명의 대법관 중 6명은 가톨릭, 2명은 유대교, 1명은 개신교인이며, 최근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급격한 진보화에 대한 우려를 내비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