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 온갖 영웅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에 미국 남부 골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주인공으로 나섰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미국 프로미식축구 리그(NFL) 선수 마이클 오어(퀸튼 애론)의 실화를 기초로 한 영화 <블라인드사이드>는 오갈 데 없는 흑인 소년을 입양한 기독교인 리앤 투오이(산드라 블록)의 열혈 모정(母情)을 다뤘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성원을 힘입어 미국 개봉 당시 <뉴문>을 제치고 2억 5천만불이라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리앤 투오이 역을 맡은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블라인드사이드’는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뜻하는 말로 이 영화에서 서로의 사각지대를 지켜주는 건 ‘가족’이다.

▲오갈데없는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는 리앤 투오이 가족과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낸다.


훗날 대성한 미식축구 선수로 자라나게 될 마이클 오어는 어린 시절 약물 중독에 걸린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양부모 가정을 전전하며 지내는 신세다.

196cm, 140kg이라는 남들보다 두세 배는 크고 무거운 몸집과 남다른 운동신경을 가진 마이클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기독교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운동도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리앤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마이클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게 되자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재워 주고, 함께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성공을 이루고 화목한 가족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리앤과 그의 가족들은 순수한 마이클과의 만남을 통해 점점 변화된다.

고작 하룻밤 재워주며 집안의 물건을 훔쳐갈까 불안해했던 리앤이지만 난생 처음 침대를 가져본다고 말하는 마이클의 미소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눈물을 흘린다.

마이클 역시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단 한 번도 가족의 존재를 느껴보지 못하지만 리앤 가족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지켜주고 싶은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하나뿐인 가족을 위해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의 꿈에 도전하고 이뤄낸다.

▲어린 시절, 마약 중독에 빠진 마이클의 어머니는 마이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처지가 못 되었다. 이제 청소년이 된 마이클은 동화책 정도는 스스로 읽을 수 있지만, 리앤이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에 푹 빠졌다.


시종일관 유머와 재치, 감동코드로 이끌어가는 영화는 인종, 계급, 성별, 나이, 지위를 초월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 하지도 않고, 유치하지도 않다.

혹자는 이 영화가 미식축구, 기독교, 공화당, 노블리스 오블리제 등 미국적 가치를 앞세운 ‘미국 우월주의’를 전파한다 비판하지만 아직 미국사회 내 암암리 존재하는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가며 흑인소년을 입양했던 리앤의 진실된 모정을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갈등과 편견, 비극을 넘어서 진정성있는 모자(母子) 관계를 이뤄낸 ‘어머니’ 리앤은 영화 속에서 항상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다. 리앤의 마음 속에 거하는 십자가 사랑이 차가운 겨울, 길거리를 헤매던 한 소년의 일생을 바꾼 통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