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명혁 목사님이 3월 4일 명성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새벽기도 국제컨퍼런스 개회설교에서 전한 “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두 가지 일”(행2:42-47)이란 제목의 설교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힘써서 한 일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일이었습니다(케리그마). 둘째는 떡을 떼며 교제하는 일이었습니다(코이노니아). 셋째는 기도하며 예배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넷째는 구제와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디아코니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힘써서 하신 일도 네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산에서도 들에서도 바닷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과 교제하시되 세리와 죄인들과도 식사를 함께하시면서 교제를 하셨습니다. 셋째는 새벽 미명에 또는 밤이 맞도록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넷째는 두루 다니시면서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히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저는 교회의 중요한 특징 네 가지를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교회가 힘써 하여야 할 첫째 일은 위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마 21:13).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행 2:46). 교회가 힘써 하여야 할 둘째 일은 옆으로 이웃에게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일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와 금식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사 1:17, 58:6,7).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은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함께 이웃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전 생애를 쏟아바쳤습니다. 길선주 목사님(1869-1935)은 목사가 되기 전부터도 이미 뜨거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1906년 장대현장로교회에서 조사로 일하고 있을 때 어느 장로(박 씨)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는데 기도하면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곧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갖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새벽 4시에 종이 울렸고 신자들이 새벽 4시 30분에 장대현교회에 새벽기도회로 모여 죄를 회개하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결국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회개운동과 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그 후 전국에 다니며 새벽 기도회를 인도할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방지일 목사님이 전하는대로 새벽기도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합니다. “1년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영의 지배를 받으면 모든 일이 보장된다.” 그리고 주일 성수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고 합니다. “무고히 안식일을 범하면 처음에는 근신 처분을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수찬 정지를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책벌을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출교를 당하여야 한다.”
이기풍 목사님(1865-1942)도 평생토록 새벽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라고 부르짖으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에서 선교와 목회를 하면서 눈물의 기도와 함께 불쌍한 병자들과 가난한 거지들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윤함애 사모님은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떼들로, 낮에는 나병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새벽마다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기도와 함께 불쌍한 사람들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그랬고 손양원 목사님도 그랬고 이성봉 목사님도 그랬고 한경직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 중의 한 분인 김익두 목사님이 새벽기도는 물론 주일 성수를 강조한 이야기 하나만 더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주일 성수의 이유와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루 쉬었으므로 우리도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쉬어야겠습니다. 둘째는 사업을 잘 되게 하려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 되어서 구약시대에는 일하는 사람은 다 때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습니다만 죄는 죄입니다. 넷째는 우리 영혼을 수양시키라고 주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주일 범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다섯째는 주일 지키는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여섯째는 주일 지키는 것은 하늘에 가서 지내는 그림자입니다. 일곱째는 복 받기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것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겨온 “주일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를 한국교회가 소홀히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매식은 물론 일부 예배를 드리고 종일 자기 일에 치중해도 아무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주일 예배를 금요일 또는 토요일 예배로 대치하고 주일에는 자기 일에 종사하도록 ‘친절한’ 배려를 하는 무엄하고 몰염치한 교회까지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일 저녁예배 대신 오후 예배로 대치하며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배려하는 ‘친절한’ 교회가 너무 많아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100세가 되시는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 성수가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지난 1월 23일 저에게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예배나 저녁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수요일에는 그 절반이 참석하니 큰 문제지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힘써서 한 일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일이었습니다(케리그마). 둘째는 떡을 떼며 교제하는 일이었습니다(코이노니아). 셋째는 기도하며 예배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넷째는 구제와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디아코니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힘써서 하신 일도 네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산에서도 들에서도 바닷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과 교제하시되 세리와 죄인들과도 식사를 함께하시면서 교제를 하셨습니다. 셋째는 새벽 미명에 또는 밤이 맞도록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넷째는 두루 다니시면서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히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저는 교회의 중요한 특징 네 가지를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교회가 힘써 하여야 할 첫째 일은 위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마 21:13).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행 2:46). 교회가 힘써 하여야 할 둘째 일은 옆으로 이웃에게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일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와 금식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사 1:17, 58:6,7).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은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함께 이웃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전 생애를 쏟아바쳤습니다. 길선주 목사님(1869-1935)은 목사가 되기 전부터도 이미 뜨거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1906년 장대현장로교회에서 조사로 일하고 있을 때 어느 장로(박 씨)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는데 기도하면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곧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갖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새벽 4시에 종이 울렸고 신자들이 새벽 4시 30분에 장대현교회에 새벽기도회로 모여 죄를 회개하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결국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회개운동과 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그 후 전국에 다니며 새벽 기도회를 인도할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방지일 목사님이 전하는대로 새벽기도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합니다. “1년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영의 지배를 받으면 모든 일이 보장된다.” 그리고 주일 성수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고 합니다. “무고히 안식일을 범하면 처음에는 근신 처분을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수찬 정지를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책벌을 받아야 하고 다시 범하면 출교를 당하여야 한다.”
이기풍 목사님(1865-1942)도 평생토록 새벽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라고 부르짖으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에서 선교와 목회를 하면서 눈물의 기도와 함께 불쌍한 병자들과 가난한 거지들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윤함애 사모님은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떼들로, 낮에는 나병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새벽마다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기도와 함께 불쌍한 사람들에게 구제와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그랬고 손양원 목사님도 그랬고 이성봉 목사님도 그랬고 한경직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 중의 한 분인 김익두 목사님이 새벽기도는 물론 주일 성수를 강조한 이야기 하나만 더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주일 성수의 이유와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루 쉬었으므로 우리도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쉬어야겠습니다. 둘째는 사업을 잘 되게 하려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 되어서 구약시대에는 일하는 사람은 다 때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습니다만 죄는 죄입니다. 넷째는 우리 영혼을 수양시키라고 주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주일 범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다섯째는 주일 지키는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여섯째는 주일 지키는 것은 하늘에 가서 지내는 그림자입니다. 일곱째는 복 받기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것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겨온 “주일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를 한국교회가 소홀히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매식은 물론 일부 예배를 드리고 종일 자기 일에 치중해도 아무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주일 예배를 금요일 또는 토요일 예배로 대치하고 주일에는 자기 일에 종사하도록 ‘친절한’ 배려를 하는 무엄하고 몰염치한 교회까지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일 저녁예배 대신 오후 예배로 대치하며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배려하는 ‘친절한’ 교회가 너무 많아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100세가 되시는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 성수가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지난 1월 23일 저에게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예배나 저녁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수요일에는 그 절반이 참석하니 큰 문제지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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