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과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을 할 때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는 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 역시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하거나 사역을 감당할 때 우리의 소원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합니까? 내가 일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오시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 내가 거하게 하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 있길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하시고 꿈꾸시는 일에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나의 정체성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심이 없으니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 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와서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과 달이 더 밝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 어두운 세상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밝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성경적 지식은 많지만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거리가 가깝지 않다면 그것은 헛된 지식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 더 선명하게 바라보기 원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잘 받아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의 자세를 말합니다. 감사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 표현으로 이곳까지 왔습니다. 내가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내가 근면하고 성실해서 이곳까지 온 것 같지만 내 부지런함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을 받을 만한 때다’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 받아야 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 받아야 합니다. 내일 하지. 지난 다음에 하지. 아닙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지금은 놀라운 은혜의 시대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을 만한 때에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은 어찌 서로 싸우고 있느냐 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싸우면 사람들은 교회를 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남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연약함으로 늘 갈등하고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을 곧 만날 것인데, 그 때를 바라보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헛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싸우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때를 기억하며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때문에 시험에 들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드럽게 말을 하기 위해 복잡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과 사명이 비방 받지 않고 훼방 받지 않도록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곤란이 와도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견디어 나갑니다. 사명이 있는 자가 오늘을 견디는 것입니다. 내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아니까 오늘 좀 부족하고 어려워도 견딜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혼이 났는데 빌립보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빌1장 3-4절을 보십시오. 빌립보 교우들은 감사와 기쁨의 대상이 되고 한 결 같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보기 원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만날지라도 견디고 사명 잘 감당해서 상급의 심판대에서 영광의 면류관 받는 인생들 되게 바랍니다.
신앙 생활하거나 사역을 감당할 때 우리의 소원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합니까? 내가 일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오시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 내가 거하게 하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 있길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하시고 꿈꾸시는 일에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나의 정체성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심이 없으니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 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와서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과 달이 더 밝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 어두운 세상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밝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성경적 지식은 많지만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거리가 가깝지 않다면 그것은 헛된 지식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 더 선명하게 바라보기 원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잘 받아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의 자세를 말합니다. 감사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 표현으로 이곳까지 왔습니다. 내가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내가 근면하고 성실해서 이곳까지 온 것 같지만 내 부지런함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을 받을 만한 때다’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 받아야 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 받아야 합니다. 내일 하지. 지난 다음에 하지. 아닙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지금은 놀라운 은혜의 시대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을 만한 때에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은 어찌 서로 싸우고 있느냐 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싸우면 사람들은 교회를 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남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연약함으로 늘 갈등하고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을 곧 만날 것인데, 그 때를 바라보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헛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싸우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때를 기억하며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때문에 시험에 들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드럽게 말을 하기 위해 복잡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과 사명이 비방 받지 않고 훼방 받지 않도록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곤란이 와도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견디어 나갑니다. 사명이 있는 자가 오늘을 견디는 것입니다. 내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아니까 오늘 좀 부족하고 어려워도 견딜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혼이 났는데 빌립보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빌1장 3-4절을 보십시오. 빌립보 교우들은 감사와 기쁨의 대상이 되고 한 결 같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보기 원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만날지라도 견디고 사명 잘 감당해서 상급의 심판대에서 영광의 면류관 받는 인생들 되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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