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말로 목사답지 못할 때 먹사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주 많이 먹는다는 의미로 볼 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보다도 먹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것도 양념이 많이 든 음식은 더 좋아합니다. 양념의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양념이 많은 것이 싫어졌습니다. 언젠가 어느 집의 고기가 참 맛이 있었습니다. 그 고기가 생고기 옅습니다. 다른 맛이 아닌 고기의 원래 맛이 그대로 드러난 고기였습니다. 그런데 보통 고기 집에 가보면 양념고기보다 생고기 가 더 비쌉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생고기는 고기 맛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질이 좋지 않은 고기는 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기가 별로 좋지 않으면, 양념을 풀어서 섞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고기질이 조금 떨어진 다해도 아무나 알아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양념고기는 고기 맛으로 먹기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습니다. 양념이 고기 맛을 재대로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고기가 양념고기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좋은 인생은 자기의 재료 맛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인생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려면, 자신의 부족과 자신의 실패와 자신의 약함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들어내는 데 있어서 수치심과 두려움까지 드러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자기의 인생재료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십자가의 경험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다릅니다. 용납과 용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인생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게 됩니다. 자기 맛을 드러내는 멋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수준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자기 얼굴로 사는 사람이기에 멋진 인생인 것입니다. 생고기 같은 고기 맛을 드러나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본뜬 얼굴의 성형은 양념고기 같은 얼굴인 것입니다. 자기 개성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온통 양념으로 버무린 얼굴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은 자기의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는 인생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십자가가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용납과 용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도 악하고 약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악한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면 사람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치심과 두려움의 가면을 쓰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용납과 용서를 확신하면 자신을 드러내게 됩니다. 남이 아닌 자신으로 살게 됩니다. 내가 병자인데 건강한 사람인척, 죄인인데 의인 인척하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약한 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용납과 용서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용납과 용서의 확신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이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생이 자기를 포장하는 양념고기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재료를 드러낼 수 있는 생고기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Dec, 20, 2009 , 목양 실 에서 김 병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