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핵심 메시지는 “원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을 수없이 배반한 인간들을 하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신 일입니다. 성탄을 축하하는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성육신의 사건은 내 입장과 내 생각과 내 과거의 맺힌 것을 버리고 이웃의 입장과 이웃의 수준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다가갈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면 보통은 저항을 받습니다. “내 친구의 친구도 내 친구”지만 “내원수의 친구는 내 적”이라는 말처럼,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사람도 밉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미워하라고 설교할까요? 저는 절대로 그런 설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심정은 이해됩니다. 시편 137편 8-9절을 보면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아무리 한이 맺혔어도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섬뜩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아이가 바위에 메어침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환장한 부모의 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실제로 그런 일을 하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기라도 하는 그 심정이 이해는 갑니다.

공산당에게 가족이 죽임을 당한 분들이 지금도 이를 갈면서 “빨갱이”를 미워하고 일제 시대에 가족이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분들이 지금도 “쪽발이 왜놈”을 미워하는 심정을 공감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합니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아내, 바람 핀 배우자의 뻔뻔한 얼굴을 봐야 되는 남편과 아내들, 믿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등 뒤에서 비수에 꽃혀 깨어진 우정에 우는 친구들, 믿고 빌려 준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면서 누명을 씌운 동창생, 자식의 앞날을 망쳐 놓고 그래도 잘했다고 우기는 그 전남편, 정말 인내심을 시험하고 감정을 폭발시키기 위해 곳곳에 장치한 지뢰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기 저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심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도전이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탄절에 선물이나 축하보다 더 급한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미워하고 동의하지 않는 이 모든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이 성탄절에는 내 마음에 정말 용서못할 한 사람을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새기십시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일에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사랑과 희락화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