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Lewis)는 ‘찰스 윌리엄스에게 드리는 에세이(Essays Presented to Charles Williams)’ 이라는 책에서 윌리엄스의 현실주의를 자주 이야기하는데, 특히 루이스는 윌리엄스가 행복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인용합니다.

‘이세상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고통스러운 세상을 모두다 반드시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면 더욱 견디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행복해져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질 때 더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죄악으로 완전히 부패했다고는 하지만 또한 밝은 면도 있음을 인정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물이 새고, 벌레 가 득실거리는 더러운 초가삼간도 자유가 없는 감옥보다는 견뎌내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든지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며 그 고통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현대 정신 건강 철학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지 못할 때는 무언가 내가 잘못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치관은 우울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때때로 불행을 피할 수 없는데 이때 불행하다는 압박을 받게 되면 더욱 불행해집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우울증 때문에 더욱 우울해 하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 우울증에 걸리다니 웬일이냐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울증에 빠진 기독교인을 상담할 때는 우울증과 함께 이에 따르는 죄책감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이런 분들에게 성경 속에서 믿음의 선조들도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들을 찾아 읽어 보도록 해드립니다. 특히 시편에는 분노,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폭발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마주 대하는 순간 찬양과 감사로 바뀜을 봅니다.

예를 들어 시편77편 4절에 불면증과 우울증의 표현으로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8절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불평으로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 하였는가’ 또 14절에는 희망의 표현으로 ‘ 주는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등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함을 볼 수 있습니다.

통증은 우리 몸의 일부에 이상이 생겨서 보살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울한 감정 또는 우울증은 우리 삶에 의미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처럼 우울증은 나름대로 소중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증이 찾아오면 삶의 분명한 목적이 없어서 권태로워진 삶을 해결하라는 경고로 알고 자신의 삶에서 보다 깊은 의미를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일 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으로 옮길 때 우울증으로 부터 벗어나기 시작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