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사람으로 인해서..대조(12-17) 비교(18-21)
본문 : 롬5:12-21

자 로마서를 다시 한 번 정리 해 봅니다. 이 로마서를 나누면 몇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나요? 다섯 부분입니다.

죄에 대해서 Sin(1:18-3:20), 구원에 대해서 Salvation(3:21-5:21), 어떻게 구원 받을 것인가? 그럼 구원 받은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Sanctification(6:1-8:39), 왜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셨는가? Sovereignty(9:1-11:36),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 Service.(12:1-15:13)

그럼 오늘 두 번째, 구원의 대한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 은혜를 나루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부분이 로마서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 중에 하나이면서 또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역사적 고찰에 대한 요약을 합니다. 그리고 ‘왜 우리의 삶에 이러한 문제들이 있는가?’와, ‘왜 악은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것인가?’, ‘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무엇인가?‘, ’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복음을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면서도 난해한 부분인 것입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왜 죄가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것인가?

본문에 단 한사람 아담에 의해서 들어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이 실제 존재 했던 사람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불순종으로 죄가 이 세상으로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불순종이 무엇이었나요? 바로 선악과를 금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와가 먼저 어겼지만, 그 가정의 가장인 아담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와는 꼬임에 넘어간 것이지만 아담은 고의적으로 알면서도 죄를 범한 면에서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대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에게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엄중히 경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많은 선택을 주셨습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많은 축복의 선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을 향해 질주를 했나요? 선악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판도라의 상자 얘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만이 가지는 불을 훔쳐서 사람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제우스신은 여자를 만들어서 내려 보냈는데 그 여자의 이름이 판도라입니다. 그 여자는 땅에 오면서 제우스로부터 상자 하나를 받아 오는데 절대 열면 안 된다는 엄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상자 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던 판도라는 기어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그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통풍과 신경통, 복통, 그리고 질투와 악의, 복수 등 인간에 대한 온갖 정신적, 육체적 해독이 도망쳐 나와 널리 흩어져 버린 것입니다. 판도라는 깜짝 놀라서 급히 뚜껑을 도로 덮었으나, 아! 슬프도다. 안에 들었던 것들은 모두 도망가 버린 후이며 밑바닥에 깔려 있던 것 하나만 남았을 뿐인데 그것은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그만큼 인간의 잘못된 호기심, 결국은 불순종 때문에 당하는 불행한 모습을 신화로 표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러한 똑같은 성향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번 시험을 해보십시오. 아마도 십중팔구는 똑 같은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왜 죄가 이 세상에 존재 하는가? 그건 바로 하나님이 악을 만드신 분도 아니고 악의 근원도 아니십니다. 악은 바로 한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럼 왜 사람이 죽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서 죽음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두 쌍둥이는 바로 죽음과 죄입니다. 이 둘은 서로 붙어 다닙니다. 죄가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는 곳엔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죽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바로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 종류의 죽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으로 죽음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이 죽음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원래 우리가 창조 될 때에는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상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영혼이 육신과 분리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적 죽음으로 인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피조세계와는 영원한 단절이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살아 있는 피조물과 교통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사용하던 30가지의 원소로 구성된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영이 죽는 것입니다.(Spiritual Death) 창세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범하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곧 바로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수 백 년을 계속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영의 죽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보다 더 심각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그는 벌써 그의 내부에서는 죽음이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향은 자손 대대로 물려지는 유전병과 같이 이제 누구든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자는 똑같은 것을 지니고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영적으로 죽은 자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도 바로 이러한 이유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에 생명이 없고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숨 쉬고 살아 있는데 동시에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건 바로 영적으로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바울은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것이고 ,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