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world"라는 말이 있습니다. 헤어질 때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는데 다시 만나거나,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전부터 알만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쓰는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는 처음 만나게 되면 으레 지난 동안 피차 어떤 관계로 맺어진 것은 없는지, 아니면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서로 탐문(?)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아무리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저런 관계로 이어져 있음을 알곤 합니다. 누가 조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누구를 만나든지 세 번 정도만 관계를 이어가보면 어떤 모양으로든지 서로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은 그만큼 우리는 관계를 귀히 여기며 살고 있다는 말이고, 또 그만큼 사람들 사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북가주 산호세에 있는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신 이성호 목사님께서 말씀 중심의 사역을 해 오셨기 때문에 교인들께서 말씀에 대한 자세가 이미 잘 정돈되어 있어서 저도 말씀을 통해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기간동안 여러 귀한 분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주셔서 삶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진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집회 전 까지 그 교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 교단의 좋은 설교자인 이성호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교회, 몇 년전쯤 한인연합감리교회 전국대회가 그 교회에서 개최되어 참석했던 교회, 우리 교회에 계시던 김홍기-김경자 장로님 내외분께서 산호세로 이사하신 후 출석하시는 교회, 윤성욱 집사님 부모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 그리고 김장로님께서 그리로 이사하실 즈음에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시다가 이 지역으로 이사 와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고 계시는 이재호-이현진 집사님이 신앙 생활하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만한 연결만 가져도 비록 제가 개인적으로 그 교회를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넓디넓은 미국땅 서쪽 끝에 있는 교회가 동쪽 끝에서 사는 제게 낯설지 않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집회를 인도하며 교인들을 만나보니 제가 살아온 삶의 과정마다 저와 연결된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같은 마을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자랐던 같은 고향 사람을 비롯해서, 청소년 시절에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의 권사님과 집사님을 40년 만에 만나 뵈었고, 그 후 20대에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던 권사님 가족들, 그리고 서울에서 부목으로 섬기던 교회에 함께 계셨던 권사님 내외분과 미국에 와서 첫 번 담임목회를 한 위스칸신주 교회의 교우이셨던 내외분, 거기에 우리 교회에 계셨던 김장로님 내외분, 윤성욱 집사님 부모님, 그리고 같은 교회는 아니지만 그 지역에 계시는 이운봉 장로님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 이재호-이현진 집사님과 함께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오셨다는 많은 분들....

짧은 집회 기간의 만남이어서 그분들과 따로 만나 서로가 함께 했던 시절의 얘기를 깊이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분들을 만나면서 생각해 보니, 제 생애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함께 했던 분들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시작해서, 10대와 20대, 30대와 40대, 그리고 지금 50대에 이르기까지 제가 살아온 삶의 거의 모든 과정의 얼마큼씩을 함께 했던 분들을 만나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어렸을 적부터의 제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이지만 서로가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살면서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거나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한다면 오랜만의 만남이 그렇게 반가울 수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서로 피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통합한지 14주년이 되는 것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서로가 다른 신앙의 전통을 이어온 두 교회가 함께 만나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이루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게 만나서 14년을 함께 해올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통합한다고 할 때, 주변의 많은 이들이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염려하는 소리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가 오늘 지나온 14년의 과정을 감사하며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오늘은 부족한 것이 참으로 많은 제가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처음 파송받은지 20년이 됨을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목사에게 목회란 어디에서 얼마동안 하든지 매일 매일이 처음이며 마지막 사역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기에 20년 동안 사역한 것을 특별히 셈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지난 20년 동안 같은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그때까지 함께 살아가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지내든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여기서의 우리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게 되는 날이 이를 때, 그때에도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 기쁘고, 만나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