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인지 기억이 확실히 나지 않는다. 데이빗이 엄지 손가락에 뾰족이 난 뭔가를 손톱으로 뜯었다가 피가 한참 멈추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 어쩌다가 피가 멈추긴 했는데 이상하게 그 자리가 부어 오르고 모양이며 색깔이 보기 좋지 않게 변해갔다.

결국 의사와의 여러번의 면담 끝에 부어 오른 자리를 절단하기로 했다. 바로 어제 데이빗은 그 절단수술을 피부과에서 받고 붕대를 칭칭 감은채 집에 왔다. 이틀동안 붕대를 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주 간단하고 작은 수술이었는데도 너무 아팠다고 징징(?)대는 데이빗의 불평을 나는 절반쯤 무시하고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좀 배려할 줄 아는 아내라면 설거지며 아이 기저귀 가는 것 등등은 맡기지 않을 것도 같은데 나는 그쪽 소속이 워낙 아니라서… 둘째아이가 응아를 했다며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했다. 내가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본 데이빗은 자기가 아기 기저귀를 솔선해서() 갈았다.

나는 개킨 옷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세면실에서 이를 닦고 있었다. “Babe~~” 데이빗이 약간 애탄듯이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해서 아기 방에 가 봤더니 그만 엄지손가락에 칭칭 감은 붕대에 아기 똥이 온통 묻어 있는게 아닌가. 자기 똥을 만질려고 하는 아기를 말릴려고 했다가 그만 데이빗의 손에 그것이 묻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얼른 아기를 인수 받아 기저기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데이빗은 화장실에 가서 물을 손수건에 살짝 묻혀서 붕대를 열심히 닦아 댔다. 닦는다고 그것이 완전히 깨끗해질까?... 좀 닦였다고 보였는지 데이빗이 이제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얼굴이 바로 이그러졌다. 아이고 이렇게 어떻게 이틀 동안을 살지? 데이빗이 불평을 했다. 나는 그 지저분한 엄지손가락으로 데이빗이 이것저것들을 손댈것을 생각하자 벌써부터 불결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빗은 집안의 모든 문들을 열 때 그 손을 이용했다. 아이들 점심을 가방에 넣을 때도, 텔레비젼 리모콘을 사용할 때도, 심지어 나에게 허그(hug)를 할 때도. 나는 그의 두툼한 엄지손가락이 나의 등을 꼭 누르고 있음을 느끼면서 절반은 울상이 된 채 그의 허그를 받았다.

다음날 퇴근해서 집에 오니 데이빗이 아이들에게 줄 치즈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식빵을 하나하나 꺼내서 넓은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막 버터를 바르려고 하는 찰나였다. 나는 그가 식빵을 하나씩 집을 때 어제의 그 엄지손가락을 이용하고 있음을 보고 기겁을 했다. 거기서 그만 그를 제지했다. 내가 하겠다고.. 데이빗은 마치 그 전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듯, 그 엄지 손가락의 붕대가 그냥 자기몸의 일부가 돼버린 것처럼 별다른 느낌없이 음식도 그 손으로 집어서 잘만 먹는다. 하루만 더. 하루만 참자. 내일이면 붕대를 풀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면서 조금은 우습게도 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하나를 떠올렸다. 손을 씻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것들의 더러움에는 무감각해 있으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의 더러움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공격해 대는, 마치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가 아닌가. 하루만 지나면 데이빗은 붕대를 풀고 깨끗한 엄지손가락을 회복할 것이지만 나의 입에서 나오는 지저분한 것들은 어떻게 깨끗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루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 하다.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이고,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