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
날짜 : 날짜 2009년 6월 7일
성경본문 : 출 20장 4-6절
제목 : 삼, 사대 VS 천대
오늘은 삼, 사대 VS 천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복과 저주를 알아야 하는데 먼저 복을 알아야합니다.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사용되는 첫번째 복은 창세기에 나옵니다. 누가 그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을 생각할 때 복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가까워질 수록 복에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인 저주는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는 또한 창세기에 나옵니다. 아름다운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먹였습니다. 남편에게 갖다 주었을 때 남편이 No라고 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6절,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7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결국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가 멀어진다면 그것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좋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제목처럼 3, 4대 Vs 천대이기 때문입니다. 3, 4대를 고생해도 천대를 잘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아주 큰 것도 볼 수 없고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아주 큰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한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축복이고 저주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항상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저주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좋은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생에 해가 되고 피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그 아이가 좋든 싫든, 무서워하든 행복해하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신앙도 지옥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지옥에 가게 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즉 저주에 관한 말씀도 우리가 축복된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까. 이것은 마치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한 수도꼭지에 찬물과 더운물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도 마치 이런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축복의 물이 나올 수 있고 저주의 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첫번째, 모방을 통해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다. 여러분 삼사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삼대가 산다고 할 때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그러니 그 삼대가 고생하는 것은 보통 집안에 내리는 저주가 그 집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항상 나쁜 습관을 그들에게 보이면 그 습관을 보고 자라는 아들과 손자들이 그것을 답습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주일학교부터 교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교회에 오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절에서 자란 아이들은 절에 가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의 환경이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많은 것이 변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주일학교에 오는 것 만해도 반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만도 축복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렵고 낙심될 때 기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도 그대로 보고 자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정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말을 계속하면 그 아이들의 인생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 응어리 진 것이 계속 3, 4대까지 내려가는 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불평보다는 감사해야 하고, 용서하면서 화해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대로 부모의 모양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과 고통을 다시 에너지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 주정뱅이가 두 아들을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하지 않고 매일 술 마시고 탕진해서 모든 것이 다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자라서 한 아들은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한명은 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습니까? 나는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서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들에게 물었더니 우리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기 때문에 나도 술주정뱅이가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한명은 나는 그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하며 살았고 한 사람은 나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구나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그곳에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저주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의 장입니다. 앞에는 축복이 잘 나와 있지만 뒤에는 저주가 많이 나와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5-19절을 보면, 너무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을 때 이런 저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비행기의 자동조정 장치와 같습니다. 이 자동조정 장치가 고장났다고 하면 아무 길도 없습니다. 찾아가기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길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마치 조정장치와 같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신호도 없지만 성령님이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고 나갈 때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계속 그것을 향했을 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이 같이 선진처럼 믿음을 가지고 축복을 누리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죄의 흐름과 저주의 흐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2장에 요시아 왕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 안된다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너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을 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끝까지 의지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저주와 죄는 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타이어를 갈 볼트를 손으로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공구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아플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해야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약한 존재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쌓아올리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물을 보고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그리하면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주는 죄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저주와 멀리하는 길은 죄에서 자유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죄에서 자유케 하는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날마다 축복의 길로 걸어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꿈을 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같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때 우리 인생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렵고 희망이 안 보여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 막혔던 문이 열리고 죄와 사망의 벽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되도 계속 감사하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넘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같이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피곤해도 믿음마저 말라버리면 안됩니다. 믿음이 없어지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더 황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이곳에 있습니다. 저주는 끊어집니다.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다른 소리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낙심과 좌절되는 소리는 성경에 없는 소리입니다. 성경에 있는 소리만 들으십시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저주가 나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어둠이 다 사라져가는 우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날짜 : 날짜 2009년 6월 7일
성경본문 : 출 20장 4-6절
제목 : 삼, 사대 VS 천대
오늘은 삼, 사대 VS 천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복과 저주를 알아야 하는데 먼저 복을 알아야합니다.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사용되는 첫번째 복은 창세기에 나옵니다. 누가 그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을 생각할 때 복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가까워질 수록 복에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인 저주는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는 또한 창세기에 나옵니다. 아름다운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먹였습니다. 남편에게 갖다 주었을 때 남편이 No라고 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6절,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7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결국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가 멀어진다면 그것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좋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제목처럼 3, 4대 Vs 천대이기 때문입니다. 3, 4대를 고생해도 천대를 잘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아주 큰 것도 볼 수 없고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아주 큰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한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축복이고 저주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항상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저주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좋은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생에 해가 되고 피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그 아이가 좋든 싫든, 무서워하든 행복해하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신앙도 지옥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지옥에 가게 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즉 저주에 관한 말씀도 우리가 축복된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까. 이것은 마치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한 수도꼭지에 찬물과 더운물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도 마치 이런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축복의 물이 나올 수 있고 저주의 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첫번째, 모방을 통해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다. 여러분 삼사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삼대가 산다고 할 때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그러니 그 삼대가 고생하는 것은 보통 집안에 내리는 저주가 그 집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항상 나쁜 습관을 그들에게 보이면 그 습관을 보고 자라는 아들과 손자들이 그것을 답습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주일학교부터 교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교회에 오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절에서 자란 아이들은 절에 가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의 환경이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많은 것이 변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주일학교에 오는 것 만해도 반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만도 축복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렵고 낙심될 때 기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도 그대로 보고 자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정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말을 계속하면 그 아이들의 인생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 응어리 진 것이 계속 3, 4대까지 내려가는 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불평보다는 감사해야 하고, 용서하면서 화해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대로 부모의 모양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과 고통을 다시 에너지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 주정뱅이가 두 아들을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하지 않고 매일 술 마시고 탕진해서 모든 것이 다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자라서 한 아들은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한명은 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습니까? 나는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서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들에게 물었더니 우리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기 때문에 나도 술주정뱅이가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한명은 나는 그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하며 살았고 한 사람은 나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구나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그곳에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저주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의 장입니다. 앞에는 축복이 잘 나와 있지만 뒤에는 저주가 많이 나와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5-19절을 보면, 너무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을 때 이런 저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비행기의 자동조정 장치와 같습니다. 이 자동조정 장치가 고장났다고 하면 아무 길도 없습니다. 찾아가기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길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마치 조정장치와 같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신호도 없지만 성령님이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고 나갈 때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계속 그것을 향했을 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이 같이 선진처럼 믿음을 가지고 축복을 누리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죄의 흐름과 저주의 흐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2장에 요시아 왕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 안된다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너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을 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끝까지 의지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저주와 죄는 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타이어를 갈 볼트를 손으로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공구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아플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해야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약한 존재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쌓아올리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물을 보고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그리하면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주는 죄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저주와 멀리하는 길은 죄에서 자유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죄에서 자유케 하는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날마다 축복의 길로 걸어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꿈을 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같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때 우리 인생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렵고 희망이 안 보여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 막혔던 문이 열리고 죄와 사망의 벽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되도 계속 감사하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넘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같이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피곤해도 믿음마저 말라버리면 안됩니다. 믿음이 없어지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더 황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이곳에 있습니다. 저주는 끊어집니다.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다른 소리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낙심과 좌절되는 소리는 성경에 없는 소리입니다. 성경에 있는 소리만 들으십시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저주가 나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어둠이 다 사라져가는 우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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