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한국 KBS홀에서 열린 한-이스라엘 건국 60주년 음악회 연주, 2009년 1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북은행 신년음악회 중 KBS교향악단과 협연…. 그녀는 한-이스라엘 음악회에서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라도 도전할 엄두를 못낸다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를 훌륭하게 연주해 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3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7살 때부터 한국,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20여회 공연을 했고 미국과 한국의 콩쿨을 휩쓸었다. 10살이 되면서 미국 시카고로 유학와 현재 노스웨스턴대학교 알미타 베이모스 교수와 시카고음악원 마르코 드레허 교수의 사사를 받고 있다. 12살에 드디어 카네기홀을 밟았다.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나이는 지금 고작 14살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고수지(Susie Koh) 양이 오는 3월 6일 오후 8시, 다운타운의 Music in the LOFT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한국, 이스라엘, 미국을 넘나드는 고 양의 이력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고 양은 한국의 대표적 초교파 신학교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고세진 총장의 딸이다. 고 총장은 시카고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근동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된 인물이다. 수지가 지금 시카고에서 수학 중인 것도 아버지의 시카고 유학 경험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 양은 아버지가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의 교수, 총장으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서 자랐다. 한국인인 고 양이 한-이스라엘 건국 음악회에서 연주할 자격을 얻은 것은 비단 그녀의 천재적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금발의 미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그녀는 생후 6개월에 당시 예루살렘대학에서 고고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 총장에게 입양됐다. 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있는 한국인-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돼 이스라엘에서 자라다가 모국으로 돌아와 한국과 이스라엘의 친선을 나누는 음악회에 선 순간이었다.
2009년 1월의 일이다. 고 양이 전북은행 신년음악회 무대에 오르기 30분 전, 분장실에서 고 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딸의 공연을 돕느라 저녁식사를 못해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수, 혹은 학교 행정의 총책임자인 총장으로만 늘 만나던 그가 아버지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아직 어린 수지의 공연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임을 감사합니다. 저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고 특히나 클래식은 더욱 모릅니다. 그런데 딸의 공연을 계속 보게 되면서 점점 음악을 알게 되고 또 제 삶의 폭과 넓이가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딸이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에 방송됐던 ‘베토벤 바이러스’도 다 보진 못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수지의 평소 모습과 연주할 때의 모습은 어떤가요.
“아직 14살인 수지는 평소에 친구들과 있을 것을 보면 완전 어린아이에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죠. 그런데 바이올린만 들면 사람이 달라져요. 옆에서 보면 연주에 몰입해 악기와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도 1년 이상 연습을 해야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딸은 3개월 만에 마스터 해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국 예일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로버트 블래커 씨는 ‘거짓말이거나 천재거나’라고 하더군요.”
-수지의 꿈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오직 음악, 바이올린에만 목표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 날은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최고의 음악가가 되면 뭐하려고?’ 그런 질문을 했더니 나중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더군요. 그 중에도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한국의 많은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꿈을 향해 최고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대화 후, 고 양은 라벨(M. Ravel)의 찌간느 작품76(Tzigane, op.76)과 사라사테(P. Sarasate)의 서주와 타란텔라 C장조 작품43(Introduction & Tarantella in C major, op.43)을 완벽히 연주했다. 그러나 고 총장은 공연장엔 없었다. 수지가 연주할 때 가족이 객석에 있으면 부담스러워한다며 방송으로 딸의 연주를 지켜 봤다고 한다. (인터뷰 부분은 한국에서 고준호 기자가 취재했다.)
이제 며칠 뒤면 고수지 양의 독주를 시카고에서 만날 수 있다. 지친 이민 생활에 감미로운 선율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펼쳐질 기대에 벌써 부풀어 오른다.
3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7살 때부터 한국,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20여회 공연을 했고 미국과 한국의 콩쿨을 휩쓸었다. 10살이 되면서 미국 시카고로 유학와 현재 노스웨스턴대학교 알미타 베이모스 교수와 시카고음악원 마르코 드레허 교수의 사사를 받고 있다. 12살에 드디어 카네기홀을 밟았다.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나이는 지금 고작 14살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고수지(Susie Koh) 양이 오는 3월 6일 오후 8시, 다운타운의 Music in the LOFT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한국, 이스라엘, 미국을 넘나드는 고 양의 이력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고 양은 한국의 대표적 초교파 신학교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고세진 총장의 딸이다. 고 총장은 시카고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근동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된 인물이다. 수지가 지금 시카고에서 수학 중인 것도 아버지의 시카고 유학 경험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 양은 아버지가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의 교수, 총장으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서 자랐다. 한국인인 고 양이 한-이스라엘 건국 음악회에서 연주할 자격을 얻은 것은 비단 그녀의 천재적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금발의 미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그녀는 생후 6개월에 당시 예루살렘대학에서 고고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 총장에게 입양됐다. 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있는 한국인-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돼 이스라엘에서 자라다가 모국으로 돌아와 한국과 이스라엘의 친선을 나누는 음악회에 선 순간이었다.
2009년 1월의 일이다. 고 양이 전북은행 신년음악회 무대에 오르기 30분 전, 분장실에서 고 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딸의 공연을 돕느라 저녁식사를 못해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수, 혹은 학교 행정의 총책임자인 총장으로만 늘 만나던 그가 아버지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고세진 총장과 고수지 양 ⓒ 고준호 기자 |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임을 감사합니다. 저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고 특히나 클래식은 더욱 모릅니다. 그런데 딸의 공연을 계속 보게 되면서 점점 음악을 알게 되고 또 제 삶의 폭과 넓이가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딸이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에 방송됐던 ‘베토벤 바이러스’도 다 보진 못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수지의 평소 모습과 연주할 때의 모습은 어떤가요.
“아직 14살인 수지는 평소에 친구들과 있을 것을 보면 완전 어린아이에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죠. 그런데 바이올린만 들면 사람이 달라져요. 옆에서 보면 연주에 몰입해 악기와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도 1년 이상 연습을 해야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딸은 3개월 만에 마스터 해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국 예일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로버트 블래커 씨는 ‘거짓말이거나 천재거나’라고 하더군요.”
-수지의 꿈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오직 음악, 바이올린에만 목표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 날은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최고의 음악가가 되면 뭐하려고?’ 그런 질문을 했더니 나중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더군요. 그 중에도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한국의 많은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꿈을 향해 최고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대화 후, 고 양은 라벨(M. Ravel)의 찌간느 작품76(Tzigane, op.76)과 사라사테(P. Sarasate)의 서주와 타란텔라 C장조 작품43(Introduction & Tarantella in C major, op.43)을 완벽히 연주했다. 그러나 고 총장은 공연장엔 없었다. 수지가 연주할 때 가족이 객석에 있으면 부담스러워한다며 방송으로 딸의 연주를 지켜 봤다고 한다. (인터뷰 부분은 한국에서 고준호 기자가 취재했다.)
이제 며칠 뒤면 고수지 양의 독주를 시카고에서 만날 수 있다. 지친 이민 생활에 감미로운 선율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펼쳐질 기대에 벌써 부풀어 오른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