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를 두고 한 말일까? 미국까지 와서도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하는가?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 앞에서 왜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왜 나를 잡아 왔느냐고 항의 한 번 못하고 이대로 당해야만 하는가? 중범죄자들에게나 채우는 수갑을 차다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난하지만 양심껏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 원망과 탄식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한국으로 추방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큰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를 감옥에서 지내야 한단 말인가? 불안과 초조함에 입술은 마르고 정신도 혼미해 왔다. 내 영혼도 음부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때는 저녁 7시, 경찰관들이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철창이 쳐진 여러 방을 지나는데 방마다 몇 사람씩 웅크리고 앉아 있었따. 문득 구치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몇 사람이 갇혀 있는 방으로 밀어넣었다. 다행히 수갑은 풀어 주었다. 모두가 굳은 표정들이었다. 이억 만리 미국 땅에서 감방 신세가 웬말인가. 나는 세면 바닥에 벽을 등지고 앉았다.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분명히 이 소식을 들을 텐데 얼마나 놀랄까. 아마 충격에 실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많은 그 사람, 누가 저를 위로해 줄까? 나 하나만 믿고 살아왔는데.

"아, 아버지여,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환난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우리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 죄인을 구해 주옵소서.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전에도 이 종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신속하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 지금은 환난 날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건져 주신다고, 그리고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의지할 것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의 옷자락을 굳게 붙잡았다. 조금 후에 이은수 목사님이 면회를 오셨다. 너무나 반가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셨구나' 생각하고 감사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시기에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내가 왜 여기 잡혀 왔는지 영문을 모르겠으니 목사님이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목사님은 알아보고 온다고 하시더니 잠시 후에 다시 오셨다. 그러고는 가게에서 열한 살 먹은 아이와 아홉 살 먹은 남자아이에게 호주머니에서 권총같은 것을 꺼내 위협하고 2월 달에 몇 차례, 3월 달에 몇 차례 아이들의 성기를 만졌다고 누가 고발을 했다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사람을 어찌 이렇게 모함할 수 있습니까? 저는 2월 달에 맨하탄 봉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또 그런 짓을 왜 합니까?"

"어처구니 없는 일이네요. 일이 좀 심각합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는 중범죄로 다룹니다. 많이 놀랐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한 번 알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도합시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은 잠시 기도해 주시고 돌아가셨다. 그 후 두시간 쯤 지났을까, 경찰은 나를 다시 데리고 나갔다. 그들을 따라간 곳은 바로 법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목사님도 방청객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서 있었다. 그곳엔 판사가 앉아 있고 한 사람이 판사를 향해 무슨 말인지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판사의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나를 차에 태우고 또 다른 곳으로 갔다.

그곳은 독방인데 밖에서도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방이었다. 바닥엔 차가운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저녁 식사로 빵과 우유를 주었다. 신체 검사도 하고 열 손가락의 지문도 찍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은체로 밤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또 어디론가 한참을 달려가 도착한 곳은 바로 형무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광경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두 명의 죄수가 양 발목에 족쇄를 차고 쇠사슬을 끌면서 간수의 감시 아래 끌려 가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 왔다. 건물에 들어가니 마침 식사 시간이었다. 큰 식당인데 여러 간수들이 죄수들을 인솔해서 감시하며 시간을 정해 놓고 식사를 하게 했다. 나도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 정해 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음식 메뉴가 너무 좋은 것이었다. 시중에 있는 여느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빵과 우유, 감자, 스트롱빈, 소시지, 칼라그린, 파인애플 슬라이스까지 나왔다. 한국의 감방에서는 콩밥을 먹인다고 하는데 아무리 잘사는 나라인 미국이라고 하지만 죄수들에게 이렇게 잘 먹일 수가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입맛이 없었다. 빵 한 조각과 우유만 조금 마셨다. 옆에 앉은 흑인 친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소시지를 잽싸게 집어갔다. 감자도 집어서는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시간이 되어 간수가 호루라기를 불어 식사 종료 시간을 알리면 곧바로 일어나야 했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사람은 이것저것 간수 몰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간수들은 경찰봉과 같은 방망이를 들고 있었고, 말을 잘 안 듣는 죄수들은 방망이로 때리기도 했다. 식당에 모인 죄수들은 줄잡아 200여 명은 되는 듯했다. 식사가 끝나자 다시 신원 확인을 한 후 입고 있던 옷을 벗은 뒤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곤 타월 하나와 비누와 치약과 칫솔을 지급 받고 간수의 손에 이끌려 또 어디론가로 끌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