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크리스마스 방학 2주일간을 맞아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한국을 떠난지 7년만에 처음 방문하는 것였습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첫번째는 막내 아들 진석이의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수술과 저의 건강상의 이유로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 울란바토르의 매연과 공해로 3주간 계속 되는 기침과 이로 인한 두통, 가슴 통증으로 어쩔수 없이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가서 하루만에 다 나아서 다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한국에서 먹던 한약을 몽골 세관에서 잡혀 벌금을 미국 달러로 100불이나 지불했답니다.

7년만의 한국 방문은 저에게 같은 언어와 음식을 먹는 한국인라는 동질감과 함께 또 다른 문화충격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10연간의 적응, 다시 몽골에서의 적응, 그리고 다시 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실로 저에게 싶게 자동차 기어 바꾸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쩌면 저는 어디에서든 영원한 이방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에 간 첫번째 임무는 막내아들 진석이 수술을 시키는 것이였습니다. 진석이는 태어날 때부터 오줌나오는 위치가 잘못되어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돼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입양을 결정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비싼 병원비로 수술을 염두에 두지도 못했고, 한국으로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여건이 없었던 차에 이곳 몽골로 선교를 오는 바람에 드디어 진석이의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석이의 첫 한국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진석를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 지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오히려 인기가 많았습니다. 마침 미국 오바마가 첫 흑인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진석이가 오바마 닮았다고 너무 신기해 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방문하여 구경하고 어떤 아주머니는 매일 20분씩 처다 보고 가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국도 다문화에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겼습니다. 왠만한 규모의 교회들은 선교지의 현지인 지도자들을 한국에서 목회자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저와 반석, 하늘이는 일정상 예정되로 2주일 후에 울란바토르로 돌아 왔고 저의 아내와 진석이는 회복을 위해 계속 한국에 머물고 다음주에 돌아 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려고 하였는데 저의 아내는 또 가자마자 배탈이 나고 아이들은 생선이나 야채를 좋아하지 않고, 저도 않 먹다 먹어서 배탈이 나고 지금 와서 생각하니 후회가 많습니다. 한국갈 때는 맛있는 것 많이 먹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가장 좋았던 기억은 한국에 있는 던킨 도넛에서 마신 커피였습니다.

수술 하루 전날 진석이의 모습입니다. 내일 수술한다는 사실도 모른채 그냥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저희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 것이란 것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깐요.

수술 후의 모습입니다. 두 손에 주사바늘이 꼽혀 있고, 오줌은 방광에서 호스로 나오고, 아프다고 울다 지쳐 자고 있습니다. 매일 하는 소독은 수술보다 더 아픈 고통이였습니다.아플 때마다 온 식구의 이름을 다 부르곤 하였습니다. 반석이, 하늘이를, 아빠, 엄마 어디에 있냐고 찾았답니다. 우리 아이는 그래도 간단한 수술이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수술후 일주일 만에 퇴원하였습니다. 매일하는 소독은 아직도 아프지만 잘 아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자리를 빌어 2주일동안 잘 환대해 주신 저의 자형 가족과 수술을 집도한 전남대 병원 비뇨과 수술진, 그리고 서울에서 하루밤 재워준 후배이자 신학 동지인 이동호 목사께 다시 한번 감사의 표시를 전합니다. 그외에 기도로서 후원해주신 여러 지체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Jason Hyunho Lee

Web: aquaballo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