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벌써 다섯 번째 동장군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산천초목이 동장군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볼 때면 ‘나도 동장군을 맞을 준비를 해야지!’하고 생각은 합니다만 자꾸 미루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제가 실제로 월동준비에 들어가는 것은 제가 서재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실의 창문으로 숨을 죽이고 은밀하게 스며들어오는 바람을 통해서입니다. 이 솔솔 스며드는 바람이 때때로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져 창문 틈이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마침내 어깨가 시린 것을 느끼게 만들면 그 때에야 저는 월동준비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봄과 가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약한데 일단 어깨를 시리게 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 미세했던 바람이 얼마나 강력해지기 시작하는지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리게 됩니다. 그 창문이 바로 책상 앞에 있기 때문에 더욱 바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면 창문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불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지요. 지하실에 서재를 꾸미며 책상을 밝은 쪽에 놓으려다 보니 자연히 지하실 창문 앞에 책상을 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창문이 그 자리에 있는 것 늘 불만은 아닙니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그 창문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참 고맙게 느낍니다. 그 창문을 통해서 지하실의 답답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상에 바짝 당겨 앉아 창문의 위쪽으로 올려다보면 자그마한 하늘이지만 분명하게 보이고, 그 창문을 통해서 밖의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그 틈이 조금 넓어도 좋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뭘, 창틀을 이렇게 딱 맞게 했나? 공기가 좀 넉넉히 통하게 만들지!”, 그런데 겨울이 되면 그 자그마한 틈이 얼마나 크게 생각되는지 집을 지은 사람들에 대하여 은근한 불만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창틀을 꼭 맞는 것으로 하지 않고 날림으로 했구나!”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바람이 들어오는 틈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아니 사람들이 아니라 제가 간사하다고 해야 겠지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저는 처음 며칠은 스워터를 입어 그 바람을 막아보기도 합니다만 곧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는 데 바로 두 개의 지하실 창문에 방풍막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루어오던 나머지 월동을 준비를 합니다. 저에게 월동준비래야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끝나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네소타에서 살던 첫 겨울에 이것을 준비하지 안했다가 큰 낭패를 당한 적도 있지요.

제가 미네소타에 살기 전에는 노스 켈로라이나에서 살았기 때문에 미네소타에서 첫 겨울을 맞을 때는 월동준비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몇 몇 성도님들이 “목사님, 이곳 겨울은 노쓰 캐롤라이나와 다릅니다. 준비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교만함 때문에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어느 저녁에 교회 사무실에 갔다가 일을 보고 나왔는데 제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 프레징 레인이 오다가 눈으로 바뀐 것입니다. 자동차 앞 유리가 프레징 레인과 눈이 함께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그것을 눈을 긁어내는 도구 없이 해결하려고 하니까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발은 사납게 휘날리는데......

그렇게 혼난 후부터는 저는 월동준비를 착실하게 합니다. 저의 월동준비는 간단합니다. 자동차 창문의 눈을 제거하는 도구, 눈 때문에 자동차 바닥의 카펫이 젖지 않도록 고무판을 까는 것, 트렁크에 겨울잠바 하나와 양초 하나를 넣어두는 것, 눈이 왔을 때 신을 신발을 자동차에 한 켤레 넣어 두는 것, 그리고 차고에 간단하게 눈을 치울 삽과 빗자루를 확인하여 두는 것 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월동준비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주님을 맞이할 준비도요 .....

글/ 시카고 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김광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