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부교회(담임 김재열 목사)에서는 지난 2일(주일)부터 5일(수)까지 오후 8시 제 9기 열방선교학교를 개최한다.

강사로 나선 김지훈 목사(북한전문박사)는 2002년부터 매 년 한차례 가량 6번에 걸쳐 북한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첫 3번은 라진. 선봉에 비지니스 때문에 들어갔고 4번째부터는 2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2007년부터는 토론토 큰빛교회(담임 임현주 목사)의 재정적인 협조로 북한에 영어. 컴퓨터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기독교인이 30-40명 정도 된다. 대부분이 유럽인. 인도네시아인. 아프리카인. 캐나다인. 호주인. 일본인. 영국인. 스패니쉬로 한국인은 5%이며 1.5세나 국적이 캐나다인 1세들이다. 거의 사업가나 대사관. 구제 기관이나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이다"고 전했다.

이어 김 목사는 "북한은 1970년부터 어려운 상황이었고 1980년대는 더 어려웠고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까지 제일 어려운 상황이다"며 "1995년, 96년의 홍수와 1997년과 2001년 가뭄으로 농경지가 황폐화됐다. 그 결과 150억 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고 520만 명이 집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에 800만 톤을 얻었던 쌀과 옥수수도 2000년에는 290만 톤으로 줄었다. 1998년 UN세계식량계획 (UNWFP)에 따르면 62% 아이들이 영양실조이며 16%의 아이들이 영양 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러다 "2002년 여름 김정일이 큰 개혁을 시도해 시장이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 가격을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활동을 억압해 공급은 제한되고 수요는 초과되는 등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물가가 상승해 임금은 200배, 쌀은 400배, 석유는 40배, 전기는 요금이 60배 올라 다시 시장을 닫고 배급 체제로 돌아갔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 목사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사진을 영상으로 소개하며 "북한에 첫 번째로 영향력 있는 남한의 기업은 현대이며 두 번째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이다. 1990년부터 김일성 생일 때마다 선물을 보내고 투자해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은 북한 남포에 5400만 달러를 투자해 평화자동차 조립 라인을 운영하고 있고 평양에 호텔과 빌딩도 갖고 있다"며 "또 김정일은 문선명 교주의 고향 평북 정주에 9스퀘어 킬로미터의 땅을 1999년에 임대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김 목사는 "주일이면 봉수교회 예배에 평화자동차 대표로 문선명 교주가 참여해 크게 헌금한다. 보통 북한 사람들은 문선명과 기독교인의 차이를 모른다. 같은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문이 열리면 북한 사람들은 착각할 것이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 목사는 북한 원조에 대해 "북한에 돈을 퍼주는 것은 반대한다. 어떻게 썼다는 것을 사진으로 받는 등 책임 있는 도움을 줘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의: 718-279-2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