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일터에서 말과 행동으로 하는 선교, 지역을 하나님의 나라 꿈으로 품는 비즈니스 선교는 새로운 전략인가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도 곳곳에서 이미 나와있고 (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교회사 초기에도, 중세기에도 잘 살펴보면 무역인들과 훈련 등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 기록이 많이 있다. 1595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최초의 무역상선을 아시아로 보냈는데, 얼마 안되어 개신교 선교사들이 무역로로 따라와 상호 협력하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회사를 통해 현지에 교회가 세워졌고 실제로 한 회사 책임자는 최초로 성경의 일부를 말레이 언어로 번역했는데 그가 번역한 마태복음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모국어로 복음을 듣는 기회를 준 것이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는 이 동인도회사를 복음 전파의 유력한 동역자로 여겼는데, 영국이 이 향료군도를 점령했던 19세기 초반에 그 지역에는 총 230명의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역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감동 깊었던 그룹은 모라비안 형제단이다. 폴 피어선의 연구에 의하면 18세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절반이 모라비언 교도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훌륭한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그들의 주요 선교 전략으로 삼았다.
프라하의 교수이며 주교이던 얀 후스(Jan Hus)가 시작한 보헤미아 동포단과 전통 교회의 부와 권력에 맞서던 기독교 왈도파 사람들이 연합 형제단이라고 뭉치면서 시작되었는데(1457년경) 이들은 일상에서 기독교의 배움을 매일의 삶에서 순종, 실천하는 일에 주력했다! 보헤미아에서 살던 모라비안들은 1722년에 로마 가톨릭의 개신교 탄압을 피해, 독일의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하기 시작, 3년 뒤에는 1백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영지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하루 24시간 이어지는 연속 기도를 100년 이상 실행했고 헤른후트는 당시 최대 규모의 선교 운동이 태동하는 발상지가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인 모라비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청나라, 페르시아, 탄자니아, 북극 등에서 활발한 해외선교를 벌였고,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 신부의 감리교 창시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32년 서인도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1760년 까지 무려 226명의 선교사들이 10개의 타국으로 파송했는데 이것은 단 20년 만에 개신교와 영국 국교에서 200년간 해온 선교 운동을 앞지른 것이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순전히 비즈니스 선교방식을 따랐다. 각자 직업에 종사하면서 타국에 들어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직업 윤리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유럽을 다니며 전도하던 순회 전도자들 사도 바울의 본을 따랐는데 장인, 교사들의 직업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스스로 재정을 해결하며 정직한 상업 활돌을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1740년 세 번째 파송된 일행이 수리남의 파라마리보에 들어갔는데 목수와 제화공들이었고, 그 후 독일에서 들어온 그리스토프 케어스텐 (Kersten)은 재단사로 일하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는데 그 재단과 직물 사업을 통해 4년 만에 (1768년) 24만 2천 탈러(독일의 옛 화폐)를 벌어드렸다. 회사는 선교와 사업을 병행했는데 수리남의 노예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주고 직업 훈련을 실시, 복음을 전파했다. 1926년 파라마리보에 일곱 개의 모라비안 교회가 세워졌는데 오늘날 수리만 사람들의 45퍼센트가 기독교인이며 그중의 3/4은 모라비안 교도이다.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은 현재까지도 경제가 잘 발전된 국가 중 하나로 케어스텐사는 설립된 지 250년 후 지금 천여명의 직원을 두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무역과 서비스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현재 현지인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모라비안 형제단의 선교재단에 속해 있으며 비즈니스 선교의 목적을 이루어가고 있다.
로마 카톨릭의 지배를 벗어나면서 많은 혼란 속에서 개신교 교리 정립에 힘을 쓰던 당시 종교개혁파와 카톨릭 모두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 모라비안 형제들은 깨달은 말씀에 대해 즉각적인 순종과 실천의 삶을 살았다. 하루 24시간 연속으로 전혀 기도에 힘쓰던 경건주의자들의 참 모습이다. 종족 위주의 삶과 쇄국 정치의 단단한 벽을 뚫고 이론이 아닌 생활 속의 믿음, 기도에서 받은 심플한 능력이었다. 연속되는 기도와 몇 백 년을 이어오는 청지기 사업–비즈니스 선교의 뿌리는 이미 깊이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교리와 값싼 은혜, 세속적인 자본주의와 기복 신앙이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연락처: 이지영, 408-313-1527, rhee.jiyoung@gmail.com
*Source: God is at Work (Ken Eldred)
[편집자 주] BAM은 Business as Mission의 약자로 사업이 곧 선교, 선교로서의 사업을 통한 총체적 선교의 한 부분을 뜻한다. 이지영은 MOM 선교회 북가지부장을 맡고 있고 실리콘밸리 CBMC에서 활동, 하와이 열방대학과 여러 곳에서 사업선교 세미나와 성경일독 강사로 사역하고 있다. 중점 사역분야는 BAM, 총체적 선교전략 개발 및 훈련, 소융자 사역 (MF: Micro Finance), 소기업 개발 (MED: Micro Enterprise Development), 의료선교 사역 훈련 및 지원 등이다. UC 버클리 전산과 졸업, 웨스턴 신학교 졸업.
선교역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감동 깊었던 그룹은 모라비안 형제단이다. 폴 피어선의 연구에 의하면 18세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절반이 모라비언 교도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훌륭한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그들의 주요 선교 전략으로 삼았다.
프라하의 교수이며 주교이던 얀 후스(Jan Hus)가 시작한 보헤미아 동포단과 전통 교회의 부와 권력에 맞서던 기독교 왈도파 사람들이 연합 형제단이라고 뭉치면서 시작되었는데(1457년경) 이들은 일상에서 기독교의 배움을 매일의 삶에서 순종, 실천하는 일에 주력했다! 보헤미아에서 살던 모라비안들은 1722년에 로마 가톨릭의 개신교 탄압을 피해, 독일의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하기 시작, 3년 뒤에는 1백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영지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하루 24시간 이어지는 연속 기도를 100년 이상 실행했고 헤른후트는 당시 최대 규모의 선교 운동이 태동하는 발상지가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인 모라비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청나라, 페르시아, 탄자니아, 북극 등에서 활발한 해외선교를 벌였고,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 신부의 감리교 창시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32년 서인도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1760년 까지 무려 226명의 선교사들이 10개의 타국으로 파송했는데 이것은 단 20년 만에 개신교와 영국 국교에서 200년간 해온 선교 운동을 앞지른 것이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순전히 비즈니스 선교방식을 따랐다. 각자 직업에 종사하면서 타국에 들어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직업 윤리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유럽을 다니며 전도하던 순회 전도자들 사도 바울의 본을 따랐는데 장인, 교사들의 직업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스스로 재정을 해결하며 정직한 상업 활돌을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1740년 세 번째 파송된 일행이 수리남의 파라마리보에 들어갔는데 목수와 제화공들이었고, 그 후 독일에서 들어온 그리스토프 케어스텐 (Kersten)은 재단사로 일하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는데 그 재단과 직물 사업을 통해 4년 만에 (1768년) 24만 2천 탈러(독일의 옛 화폐)를 벌어드렸다. 회사는 선교와 사업을 병행했는데 수리남의 노예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주고 직업 훈련을 실시, 복음을 전파했다. 1926년 파라마리보에 일곱 개의 모라비안 교회가 세워졌는데 오늘날 수리만 사람들의 45퍼센트가 기독교인이며 그중의 3/4은 모라비안 교도이다.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은 현재까지도 경제가 잘 발전된 국가 중 하나로 케어스텐사는 설립된 지 250년 후 지금 천여명의 직원을 두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무역과 서비스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현재 현지인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모라비안 형제단의 선교재단에 속해 있으며 비즈니스 선교의 목적을 이루어가고 있다.
로마 카톨릭의 지배를 벗어나면서 많은 혼란 속에서 개신교 교리 정립에 힘을 쓰던 당시 종교개혁파와 카톨릭 모두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 모라비안 형제들은 깨달은 말씀에 대해 즉각적인 순종과 실천의 삶을 살았다. 하루 24시간 연속으로 전혀 기도에 힘쓰던 경건주의자들의 참 모습이다. 종족 위주의 삶과 쇄국 정치의 단단한 벽을 뚫고 이론이 아닌 생활 속의 믿음, 기도에서 받은 심플한 능력이었다. 연속되는 기도와 몇 백 년을 이어오는 청지기 사업–비즈니스 선교의 뿌리는 이미 깊이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교리와 값싼 은혜, 세속적인 자본주의와 기복 신앙이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연락처: 이지영, 408-313-1527, rhee.jiyoung@gmail.com
*Source: God is at Work (Ken Eldred)
[편집자 주] BAM은 Business as Mission의 약자로 사업이 곧 선교, 선교로서의 사업을 통한 총체적 선교의 한 부분을 뜻한다. 이지영은 MOM 선교회 북가지부장을 맡고 있고 실리콘밸리 CBMC에서 활동, 하와이 열방대학과 여러 곳에서 사업선교 세미나와 성경일독 강사로 사역하고 있다. 중점 사역분야는 BAM, 총체적 선교전략 개발 및 훈련, 소융자 사역 (MF: Micro Finance), 소기업 개발 (MED: Micro Enterprise Development), 의료선교 사역 훈련 및 지원 등이다. UC 버클리 전산과 졸업, 웨스턴 신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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