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새 정부 조직 개편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과 철학과 반대되는 법안에 서명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무척 불편할 것입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을 거역한 오만이라고 몰아 부칩니다.

대통령 권력 인수인계 방식이 관례와 법에 따라 깔끔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불합리하게 어긋나는 제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래도 법대로 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이 하나도 잘못 된 것이 없습니다.

대통령을 배출하여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여당이 된 한나라 당이 시끄럽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선정하는 공천위원회가 구성하느라 시끄럽더니 이제 공천위원회가 구성되자 말자 꼭 유치원 어린아이들 싸우듯이 시끄럽습니다.

그동안 세력을 잡은 대통령 당선인 측을 향해서 당규에 정해진 대로 선거 준비를 하자는 소수파의 주장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규정이 정한 시기에 따라 공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서 보니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당 규정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천 신청 자격을 불허 한다"는 당규가 있었던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당연하고 마땅하고 바른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규정에 따라 국회의원 공천에서 떨어질 상황에 처한 당의 중진 인사들이 극단적인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소급입법이다, 위헌이다, 불합리하다, 모호하다고 말하면서 싸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규정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리 정해둔 게임 법칙을 지키는 것은 인간사에 가장 기본적인 도덕입니다. 그것은 공공 앞에서 행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원칙을 정한 법이 모호해 보여도 법이 정한 원칙을 깎아 내리는 것은 추한 일입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어도, 정당의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정파의 세력이 지지한다고 해도 이미 정한 규정과 원칙을 허무는 일은 천박하고 유치한 일입니다.

모세는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내어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광야 길을 행하기 전에 그들은 오래 동안 시내산 기슭에 진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에서부터 부부관계에 이르기까지 국가 공동체와 이웃 공동체를 주관할 법과 규정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법의 기본 원칙을 보여 주시고 백성의 대표들에게 구두약속을 받으신 후에 돌에 기록하시고 문서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기록된 규정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책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정치 실험을 하려 했던 미국의 혁명가들은 새로 세워지는 인민의 통치가 헌법이라는 기록된 규범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법과 규정, 헌장과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공동체의 기초를 든든히 할 뿐 아니라 한 개인과 공동체의 품위를 결정하기 도 합니다. 세상의 상식과 법 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삶의 길을 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충실하게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일에도 앞장설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위 칼럼은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인 '연우포럼'(www.younwooforum.com)과 합의하에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