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계속적으로 대두되는 일은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 서로 간에 다른 견해로 인해서 논쟁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분열되기까지 하는 일들을 역사로 자주 접하게 됩니다. 특히 예배와 관련되어서 그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변화와 관계없이 예배와 찬양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 본질을 바로 이해하고 사역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느 아티클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주일 예배당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적절한지 재평가해 볼 수 있나?"라는 글과 더불어 히 12: 28절에 나오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는 말씀을 올렸습니다. 해당 글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댓글이 무려 1,500개나 달리며 찬반 논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만일 당신의 마음이 예배당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이 예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라.", "예수님이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기 전에 와인과 음식을 드셨는가?", "누구나 한 시간 정도는 음식과 음료를 거를 수 있다. 오늘날 성전은 마치 영화관처럼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커피 마시는 일에 찬성하는 이들은 "난 성전에 커피를 들고 간다. 커피는 집중력을 높여 주고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방해되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모든 것은 마음의 의도 문제다. 누구라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 "아무도 커피 없이 예배를 드릴 순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논쟁 속에서 신앙에 대한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창 2장 16-17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중요한 명령 하나를 내립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가운데는 분명한 책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모든 자유로운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파시키는 요소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해 주신 성찬의 전례는 초기 기독교 교회, 그리고 중세 교회에 있어 아주 중요한 예식(Liturgy)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예식에 중세 시대 서방 교회 (Western Church)에서는 이에 대한 이해의 전환으로 본질을 잊어버리고 비본질적인 일에 악용되어 엄청난 범죄의 온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가르쳐주신 성찬의 전례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중세 시대 서방교회(Western Church)에서는 소위 말하는 화채설 "성변화" (transubstantiation)을 주장하며 떡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전환되는 것을 믿으며 그에 대한 예식을 갖게 됩니다. (Canon of Pray). 이것을 통해 신비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거기에 음악이 오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주로 부르는 중요한 찬양은 미사 통상문(Ordinary mass) 중 가장 아름답게 작곡되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인 "거룩(Sanctus)"입니다. 거의 대부분 작곡가들이 이 곡을 쓸 때는 푸가(Fugue) 기법을 사용하여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곡을 펼쳐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예식이 결국 교황청에서는 특수 목적으로 면죄부(indulgence) 제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면죄부를 사면 그동안 지었던 죄를 다 탕감해 준다는 터무니없는 이론을 내세워 결국 돈으로 구원을 사게 된다는 형태로 전환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찬 제도가 본질의 궤도를 한참 벗어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교훈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주로부터 전승받은 성찬에 대한 바른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3-26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나를 기억하라 (remembrance of me)"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말은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것이 실제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서방 교회(Western Catholic Church)와 동방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에서는 아직도 이 주장을 펼치고 있고 성공회를 포함한 모든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펼치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그대로 인용하여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Remembrance of Me) 예식을 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에서 드리는 찬양 중 조엘 레니( Joel Raney, 1956 - )가 쓴 "기억하라"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곡은 그의 대표적 사순절 칸타타 '러브 디바인(Love Divine) ' 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 곡은 우리가 빵을 떼고 잔을 나눌 때 깊은 기도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한 선율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성찬에 사용되는 음악이 예배의 본질을 벗어나 신비를 강조하는 일에 오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해서 십자가 고난을 겪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것을 기억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복음의 완성을 이루셨던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음악으로만 쓰임 받아야 합니다. 

교회음악은 삼위 하나님을 송축하며 복음을 드러내는 일에만 온전히 쓰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