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코나에서 선교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한 가정을 만났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선교단체와 함께 갈 것을 권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급했다. 얼마 전,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가 있으니 상담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가보니, 이 친구가 와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반가웠다. 역시 헌신하여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나, 번아웃 단계에 와 있고 건강도 문제가 생겼다. 지난 수 년 동안 반복해서 보았던 패턴이다.

몇 달 전 상담했던 북아프리카의 선교사 가정 역시 전문성, 성품 모두 우수한 사람들이었다. 역시 급히 나갔고, 소속 단체가 없었다. 한텀 뒤에 건강상의 문제들과 심리적 어려움들이 터져 나왔다. 일단 귀국을 권했다. 어떤 번아웃은 회복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관계적, 육체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회복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오랜 기간 쌓여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약하다.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다.

선교 단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선교 단체가 필요한가? 이는 지역교회나 교단에도 확장될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단체 대표인 내게는 거듭 돌아가야 하는 질문이다. 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끄러운 면이 많다. 그렇기에 더욱 생각해야 한다. 훈련? 물론 제공 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굳이 무리해서 단체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우리가 아니더라도, 좋은 선교 프로그램이나 훈련은 많기 때문이다. 단체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훈련 프로그램을 하느라 에너지를 써야 할까? 우리 단체의 경우는 대부분을 아웃소싱한다. 선교사 지원과 도움 역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방점을 찍을 경우, 잘못하면 단체는 서비스 제공자가 된다. 구성원과 공동체의 관계가 고객과 회사가 된다. 공동체의 도움은 다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선교단체의 제거할 수 없는 본질은 무엇일까?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본다.

1. 펠로우십 Fellowship.

현장에서의 친밀한 관계. 이 부분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은 참여자들의 상호 헌신을 요구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만 이후의 친밀감이 가능해진다. 역시 Unlearn 은 어렵다. 잘못 배운 것들이 때때로 방해가 된다. 자신의 사역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해서 지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무엇인가를 받으려고는 하지만, 작은 공동체를 만듦에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곤 한다.

2. 페이스메이커 Pacemaker.

심장이 안 좋은 사람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점검해주는 기계. 과도한 헌신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멈추고 성찰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객관화가 필요하다. 오랜 경험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돕는 이들이 필요하다. 단기 여행이 아닌 거주는 삶이다. 장거리 달리기에는 탄탄한 준비와 중간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이 역시 Unlearn 이 쉽지 않다. 일단 마음이 결정되면 최대한 빨리 나가고 싶다. 현지 문화를 배우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보다,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써보고 싶다. 재정을 준비하고 자신을 돌아보거나 개발함이 왠지 죄스럽다.

3. 책무 Accountability.

복음은 크리스천을 세상 가운데 공인으로 서게 한다. 복음의 증거자이기에 거기에 따르는 삶의 책무가 있다. 더구나 선교사는 타문화권에서 또 파송 공동체와 후원자들 가운데 공적 책임을 지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한 투명성과 소통이 필요하다. Unlearn 이 여기서도 어렵다 선교헌신자들의 기질 자체가 메이길 싫어하고 독립적이길 원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은가? 원죄와 연결된 것이니! 그러나, 자신 삶을 객관화하고 평가받지 않음이 얼마나 많은 리더들의 추락을 가져왔던가? 우리에겐 공동체적 점검이 필요하다.

사람을 평가할 때, 나는 "헌신"에 가장 큰 점수를 줬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균형" 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생각과 삶의 균형과 안정감. 헌신과 열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리학적으로 헌신과 균형은 함께 있기 어려운 덕목이다. 에너지는 균형이 깨질 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헌신과 균형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리라. 깨어진 균형 > 헌신 > 다시 균형의 사이클. 균형을 깨뜨리고, 회복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 성령님은 공동체의 영이시다. 이 사이클과 함께 사는 삶. 즉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라이프스타일인 것이다 이 여정에 함께 할 타인이 필요하다. 그것이 공동체, 교회의 본질이다.

* 본 칼럼은 글로벌 선교단체 인터서브(INTERSERVE) 4월 뉴스레터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