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이라는 말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혹시 너무 쉽게 '믿으면 다 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간 『믿음을 의심하다』는 믿음의 본질을 성찰하는 책이다. 저자 노진준 목사는 목회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믿으면 병이 낫나요?'처럼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도대체 믿음이 뭔지, 성도들은 헷갈려 하는 것 같았다. 자신도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목회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서야 믿음의 정체가 뭔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그냥 믿으세요. 믿음이란 그런 거예요' 식의 말은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마치 심오한 진리를 다 깨닫기라도 한 듯 자신 있게 믿는다고 말하는 데서 느껴지는 "지적, 윤리적 거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그에 따르면 믿음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지적인 동의와 신뢰다.
이 중 '지적인 동의'는 믿음의 대상과 내용을 규정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일컫는 측면을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같은 말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출발이고 기본이지만, 믿음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야고보 사도가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장 19절)라고 한 데서 보듯, "단순한 지적인 동의를 믿음이라 부르다면 귀신들도 그런 동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
믿음의 또 다른 요소는 '신뢰'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믿음에 '지적인 동의'만 있고 '신뢰'가 없다면, 분명히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과 관계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마치 "나는 당신이 유능한 변호사인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제 문제를 당신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에 따르면 '믿기만 하면 된다'는 가르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믿음의 중요한 요소인 신뢰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교세 확장에 치우치다가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주인 되실 때 참된 구원이 있음을 믿고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겠다는 지적인 동의'라고 다시 전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믿음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지 않는 것. 믿음이 구원의 통로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통로에 불과할 뿐,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신뢰해서 그 통로(믿음)를 택한 것이지 통로가 우리를 의롭게 해주기 때문에 그 통로를 택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할 때에도, '믿음'이라는 말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는 '믿음'이라는 말이 현대인들에게 더욱 무게감 있게 들리기를 바란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혹은 '믿는다고 인정하기만 하면'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여기 지적인 동의와 신뢰의 요소가 다 포함됩니다."
저자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과 변증학을 전공했으며, 미 볼티모어 갈보리장로교회와 LA 한길교회에서 목회한 바 있다.
믿음을 의심하다ㅣ노진준ㅣ두란노ㅣ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