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광장에 선 기독교>, <인간의 번영> 등을 쓴 세계적인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Miroslav Volf, 예일대)가 방한해 '세상의 삶을 위하여, 차이를 만드는 신학(For the Life of the World: Theology that Makes Difference)'이라는 주제로 서울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에서 강연했다.

이번 강연은 '길을 잃은 세상, 길을 찾는 교회'라는 주제 아래 언더우드자매교회협의회 주최로 26-27일 이틀간 열린 제11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에서 진행됐다.

26일 오전 첫 강연 '좋은 삶을 찾아서(The Quest for the Good Life)'에서 볼프 교수는 "신학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계시 관점에서 '번영의 삶(flourishing life)'에 대한 비전들을 파악하고 표현하고 권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신학은 지금 길을 잃었다. 그 목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하나님 안에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번영이므로, 이것이 신학의 중심 목적이 돼야 한다"며 "우리는 이러한 선언적 자세로 신학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신학이 기독교적 확신을 지닌 공동체들을 더 잘 섬길 수 있고, 모두를 위한 번영의 삶에 관한 진리를 추구하는 문화적 씨름에 더 잘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초대교회 신학은 모두가 행해야 하는 일반적인 실천이자 특수한 소명의 '일상 신학(everyday theology)'이었으나, 역사가 흐르면서 점차 신학자들이 교사들과 구별됐고, 하나의 분과 학문이 됐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도 성경학자, 교회사가, 윤리학자 등 전문화됐다"며 "이렇게 신학은 세부적인 전문 분야의 전문가 또는 아카데믹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후에는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번영의 삶'의 의미와 함께 그것이 오늘날 왜, 어떻게 중요한지 탐구(The Quest)했다. 이에 대해 "번영의 삶은 인간이 얻고자 노력하는 선(the good)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라는 여러가지 것들보단 얻고자 노력하는 궁극적 목표"라며 "고전 철학과 기독교 신학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한 용어 '좋은 삶(good life)'이 있지만, '번영의 삶'을 선호하는 이유는 창조세계를 포함해 그 범위에 있어 포괄적이고, 창조세계의 번영을 포함하며, 통속적 의미의 '좋은 삶'이라는 이미지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미로슬라브 볼프
▲볼프 교수는 "어떤 이들은 좋은 삶에 관한 탐구는 사치라고 일축하지만, 번영의 삶에 관한 강렬한 비전은 사치가 아니다"며 "그것은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또한 살 수 없는 인간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라고 전했다. ⓒ이대웅 기자

볼프 교수는 "번영의 삶에 대한 강렬한 비전은 사치가 아니라,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살 수 없는 인간을 위한 기본적 필요이다. 모든 문화권 속의 인간은 각자의 방식대로 참된 번영을 열망하고, 자신의 번영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번영을 열망한다"며 "참된 번영의 삶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이고, 부와 권력, 명예와 쾌락 등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진주'이다. 진주를 얻기 위해 우리가 판 모든 것들은 개선된 상태로 진주와 함께 돌려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세기 반쯤 동안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번영의 삶'에 관한 비전과 관련해 서방에서의 주요한 선택과 점점 더 많은 세계 곳곳에서의 주요 선택이, 몇몇 형태의 종교적 신앙과 세속주의 사이에 있었다고 확신했다"며 "사실 세속주의가 승리하는 듯 보였지만 세계적으로 종교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적 신앙과 무신앙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고 많은 종교들 중에서 선택하며, 삶에 대한 비종교적 철학들 중에서 선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번영의 삶'에 관한 복합적 비전들은 완전히 양립불가능하고, 서로 다투면서 모든 이들의 충성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게 해야 하는 필연성을 떠안는다"며 "번영의 삶에 관한 많은 설명들이 우리를 신뢰를 얻고자 하기에, 각각의 설명이 허무주의를 피하고자 노력하기에, 이제 번영의 삶에 대한 질문은 어느 때보다 개방적이고 긴급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에 대한 진지함은 약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얼마 전까지 우리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에 관한 질문을 깊이 있게 가르친 종교 창시자들과 위대한 철학들이 우리 인간의 온전성을 위해 좋은 것을, 그리고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주리라 기대했더"며 "그러나 어떤 종교적 인물도, 철학자도, 과학자도 어떤 종류의 삶이 좋은지, 그리고 확실히 좋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재능과 열망이 합해져 우리의 꿈들을 생성하는 데 있어 가장 잘 아는 진정한 전문가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볼프 교수는 "대학들마저 학생들이 원하는 종류의 삶을 위한 자원들을 생성할 수 있는 기술들을 준비해주는 교육을 1차 목적으로 삼아 버렸기에, 사람들은 종교 공동체들이 '번영의 삶'에 대한 질문들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우선 삶의 기술의 집합, '자원'으로 이용하면서 교육과 일에서의 성공이 요구하는 것들과 여가와 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적 습관들에 의해 이미 정해진 삶의 과정을 영위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번영의 삶에 관해 지속적으로 성찰했던 전통적인 두 장소, 대학과 예배 공동체에서 그러한 탐구가 약해지고 있는 현실은 문화 위기의 주요 부분을 형성한다. 그 결과 초래된 문화적 진공 상태를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이를 메우는 시도를 했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번영의 삶에 관한 지속적 진리 탐구 차원의, 그리고 문화 차원의 대화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로슬라브 볼프
▲강연 후 질의응답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는 "기독교 신학은 여러 세기들을 통해 번영의 삶의 비전들을 표현하고, 가치에 관해 이의가 제기된 질문들을 정리하는 '지적 공간' 역할을 했다.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한 살에 대한 문제를 신학의 중심에 두었고, 모든 위대한 신학자들이 같은 연구를 했다"며 "신학은 취향이 이끌어가는 개인주의화되고 무반성적인 삶의 방식들을 논박하는 데 공헌할 수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번영의 삶의 설득력 있는 비전을, 참된 삶의 비전을 표현하고 수용하고 추구하는 것을 돕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신학은 인간이 참된 삶을 추구하도록 공헌할 수 있다. 그리고 신학이 그 목적에 충실하다면, 당연히 그러한 공헌을 해야 한다. 신학의 주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목표와 같다"며 "그 사명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첫 번째 시험에서 드러난다. 40일 금식으로 굶주린 예수님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하며 조롱했지만, 그분은 거부하시면서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답하셨다"고 했다.

볼프 교수는 "예수님이 인용하신 구약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주어진 교훈이었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떡이었으나, 백성들은 떡 이상을 필요로 했다. 그 진리는 배고픔만큼 분명하진 않지만 우리 인간의 목적을 상실하는 가능성만큼 분명했기에 그들은 정말 배울 필요가 있었다"며 "모든 인간이 그렇다. 특히 우리 현대인들이 그렇다. 우리는 훨씬 더 정교하게 다양한 떡을 만들고 즐기는 삶을 우리 삶의 주요 목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떡만으로 사는 삶을 인해 우리는 인간성에 실패한다. 신학은 좋은 삶에 관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비전을 제공해주지 못해 본연의 목적을 배반한다. 이것이 오늘날 신학계의 비극"이라며 "우리 삶에 관한 긴급한 질문에 대답하고 공공선에 기여하기 위해 신학의 도구들이 가장 많이 필요한 바로 이 순간에, 신학은 무시되고 있다. 신학이 용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비춰 번영의 삶에 관한 설득력 있는 비전들을 파악하고 자세히 표현하고 권하는 사역을 돕는 신학의 목적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