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의 종교적 반군활동에 의한 긴장감 고조는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근에는 이슬람 국가나 이슬람 무장세력이 활동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장차 태평양 지역에 정치적 이슬람 패권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가장 큰 나라가 인도네시아이다. 인도네시아의 일부 정당은 현재의 이슬람 세속국가 체제인 인도네시아를 선거를 통해서 이슬람 신정국가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 실제로 최근 선거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정당이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물 위에서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동안 물 밑에서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그 토대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제마 이슬라미야로 대표되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세력은 폭탄테러와 무장 공격! 등을 통해 기독교계 마을과 이슬람 온건 성향의 마을들을 무력으로 유린하고 있는 중이다. 1999 - 2002년 사이에 술라웨시와 말루쿠 사태를 통해 1천 명 가까운 양민이 학살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리핀의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성화가 인도네시아에만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태국의 남부 지역의 이슬람 지역은 이미 무장세력의 수중에 떨어져 그들만의 자치를 시행하며 반대자들에 대한 학살도 흔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이슬람 신자인 주민 역시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에 동조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각기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는 듯 보이는 이슬람 무장투쟁은 사실은 서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각국의 이슬람 무장세력은 서로 제휴하고 물자와 인원을 지원하는 등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필리핀 줄루섬에서의 정부군과 이슬람 무장세력 간의 무장충돌에는 우마르 파테크와 둘마틴이라는 이름의 두 개의 인도네시아 이슬람 단체가 개입되어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 이들 두 단체는 모두 2002년의 발리 폭탄테러로 유명해진 제마 이슬라미야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단체는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카에다와 선이 닿아 있다. 때문에 필리핀 정부는 아부 사야프의 무력 항쟁에 외국의 이슬람 테러 조직까지 개입되어 있다고 보고 이는 필리핀에 대한 중대한 주권침해라고 보고 강경대응을 하고 있다. 즉 단지 특정 지역의 분리독립 투쟁 이전에 동남아시아 전체의 이슬람 급진세력의 확장이라는 시각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줄루섬에서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에 아부사야프가 주도적인역할을 하면서 이슬람 무장투쟁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 역시 강경 노선으로 전환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앞서 1996년에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이나 모로인민해방전선은 정부 측과 평화협상을 체결한 바 있고 이후 그 조약은 다소 깨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두 단체는 강경일변도의 대정부 투쟁은 조심스러워 하는 형편이다.

아로요 정부 역시 다소 자세가 애매하다. 평화협정이 깨졌다고 해서 무조건 무장세력을 무력으로 밀어붙치기에는 정부군의 힘이 부치기도 하고,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다. 그러나 아부사야프가 일단 강경일변도로 나서고 있고, 이에 모로해방전선 등도 주춤주춤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놔두기도 그렇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이 8월 22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평화협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매일선교소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