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수많은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 갔던 삶의 영역들이 지금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까지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문화적 다원주의와 개인주의의 극대화로 인하여서, 사회생활의 영역이 더욱 세밀하게 나누어지게 되었고, 그에 따른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삶의 모습도 다양해지고, 개인과 개인의 다름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다름의 요구가 새로운 창의성과 다채로움의 유익을 선사하게 되는 유익도 얻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름이 어느 때부터 틀림과 연관이 지워지기 시작하면서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나와 다름이, 옳고 그름의 틀리다는 문제보다 더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의 전문성의 기능의 극대화가 멀리보고 통합적으로 보는 본질에 충실한 사고를 떨어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면 틀리다." 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르다."의 사전적 의미로는 서로 같지 않다,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지는 데가 있다."란 뜻이고 "틀리다."는 뜻은 "맞지 않고 어긋나다." 란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은 "틀림은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라면, 다름은 나와 같지 않다."는 의미로 더 쓰여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다름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이 나와 다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틀린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옳은 (하나님의 뜻) 삶을 살고 있는가?"를 더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채로움과 통일성을 줍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은 자신의 뚜렷한 개성이 다양한 상황에 접목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은혜의 풍성함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일체감을 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양성에서 통일성을 이룬 내용인 것입니다.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지만, 이들 중 누구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들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가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습니다. "틀림"은 본질의 문제이고 "다름"은 방법 등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사회는 점점 다름과 틀림을 연결시켜 강조합니다, 또한 성경의 가치관과 인간의 윤리에 대한 본질적 가치보다는 나와 다름에 대해 더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와 다름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틀리게 살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병규 칼럼]틀림은 본질의 문제요, 다름은 방법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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