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심했던 고등학교 3학년 K군. 친구의 소개로 다니게 된 A교회는 성도 500명 정도로, K군 또래의 젊은이들이 제법 많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교회는 K군이 잠시나마 입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에 들어가게 된 K군. 교회도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면서 청년부 임원까지 맡았다.

교회와 더 가까워지고 흔히 말하는 '헌신'이란 걸 하게 되자 이전에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교회의 주 사역이 어린이나 청소년, 청년보다 장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여러 시도 끝에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회원이 되는 것인데, 이는 불가능하다!"

평신도, '만인사제' 개념에 따라 교회 참여

현재 장로교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국내 교단들은 당회를 담임(위임)목사와 치리장로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혹 부목사들을 당회에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의결권은 없고 단순 참관 정도로 그친다. 장로는 교회의 평신도를 대표하는 직분인데, '장유유서' 때문인지 보통 나이 50은 넘어야 임직이 가능하다. K군이 당회원이 되는 것은 그의 말처럼, 불가능하다.

당회가 장로 중심이 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 장로교회들의 오랜 전통으로, 장로교회의 교세가 큰 우리나라에선 다른 많은 교파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당회를 구성하고 있다. 당회가 교회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라는 점에서 장로가 차지하는 비중도 그 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이은선 박사(안양대 역사신학 교수)는 "종교개혁 이전 중세 가톨릭교회는 사제와 평신도의 신분에 차이를 뒀다. 사제들이 교회를 다스렸고 평신도들은 그에 따르기만 했다"며 "그랬던 것이 종교개혁 이후 이른바 '만인사제'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평신도, 즉 장로들이 교회 행정과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로, 그 본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교회들은 장로 선출의 성경적 근거를 '디도서 1장 5절'에서 주로 찾고 있다. 해당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장로의 자격을 △책망할 것이 없는 한 아내의 남편 △방탕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는 자녀를 둔 자 △책망할 것이 없고, 고집대로 하지 않으며, 급하게 화를 내지 않는 자 등으로 정하고 있다. 이처럼 가시적, 비가시적 요소를 두루 갖춰야 하는 직분이 바로 장로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이 지나치게 권위주의화 되고 당회의 핵심 세력이 되면서,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 폭을 넓힌다'는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언급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나이 제한이 있고, 은연중에 '헌금액'이 그 선출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등 장로들이 교회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 장로의 임기가 사실상 없다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자칫 당회원으로서 그 직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은선 박사에 따르면, 칼빈도 장로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했고 지금도 미국에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바꾸지만 우리나라는 스코틀랜드의 종신제를 받아들였다. 사실 교단들마다 법으로 일정 기간 후 '재신임 투표'를 못 박고 있으나 대부분 한 번 임직하면 정년을 보장받는다.

국내 한 대형교회의 제직회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국내 한 대형교회의 제직회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부목사의 참여, 평신도 동역화... 새로운 시도들

이처럼 장로 직분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고, 당회가 그런 장로들로만 구성될 경우 교회의 사역이 다수 교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일부 교회들은 당회를 보다 개방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교회 구성원들의 세대별 대표와 부목사 등 장로 이외에도 당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경우가 그렇다. 이름도 당회 대신 '운영위원회'나 '청지기회' 등을 쓰며 기존 고정관념을 벗고자 노력한다.

벧엘교회 박태남 목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새로운 당회 개념을 도입해, 부목사들도 장로들과 함께 의사결정에 동참하고 있다. 부목사들이 교회 운영에 있어 실질적으로 많은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로들은 2년마다 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아야 당회원으로서 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며 "이런 시도들은 모두 '무엇이 교회를 위한 일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인천의 한 교회 역시 기성 교회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교인수 약 4천명의 이 교회에는 담임목사 외에는 목사 자체가 없다. 나머지는 모두 평신도들로, 이들이 교회의 모든 사역을 앞장서 주관하고 있다. 그 만큼 사역이 세분화 돼 있어서 부서의 수만 50여 개에 달한다. "평신들과 함께 동역한다"는 이 교회 담임목사의 목회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이한 건 이 교회의 당회를 구성하는 장로의 수가 채 10명이 안 된다는 점이다. 교인수를 고려했을 때 매우 적은 수다. 이 교회 한 집사는 "장로들을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뽑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녀들의 믿음"이라고 했다.

당회=장로,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이렇듯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가 교인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야 '일부의 독점'과 '다수의 무관심' 모두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목회자는 "대형교회에서 나타는 여러 문제들도 알고 보면 일부가 주요 결정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여기에 무관심한 분위기가 팽배한 때문"이라며 "절대 권위를 가진 담임목사와 일부 장로들이 교회의 방향을 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통하지 않는다. 세상의 기업들도 앞 다퉈 '원형 리더십'을 도입하는 마당에 교회가 예전의 방식만을 고수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갈수록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돌려 부흥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의견을 담을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